인건비에 짓눌린 한국 車산업
고임금에 발목…경쟁력 갈수록 떨어져
르노삼성 "임금 올라 내년 수출 20% 감소 우려"
車업계 "직무·성과 무시한 호봉제 폐지 시급"
[ 강현우 기자 ]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국내 근로자의 1인당 평균 임금은 9700만원이었다.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공장 근로자의 평균 임금 5만4663달러(지난해 말 환율 기준 약 5757만원)보다 68.5% 많았다. 차량 한 대를 생산할 때 걸리는 시간(HPV)은 현대차 국내 공장이 25.9시간인 데 비해 미국 공장은 15.8시간이었다. 미국 근로자가 한국 근로자보다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생산성은 훨씬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임금에 국내 차 생산 감소
다른 지역 공장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현대·기아차 노조에 따르면 유럽 공장 근로자의 지난해 1인당 평균 임금은 약 2056만원(작년 말 원화 환산 기준), 중국 공장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약 1344만원 수준이었다. HPV는 유럽 15시간, 중국 19.4시간으로 한국보다 짧았다. 한 관계자는 “인건비는 비싸고 생산성은 낮다 보니 현대·기아차가 해외에 공장을 짓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GM과 르노삼성 등 외국 투자기업들은 인건비 부담을 피해 생산 물량을 해외로 돌리고 있다. 한국GM의 국내 생산량은 2011년 81만대에서 지난해 62만대로 줄었고 르노삼성도 같은 기간 24만대에서 15만대로 감소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높은 인건비 때문에 내년 수출 물량이 올해보다 10~20% 감소할 수도 있다”며 “임금 인상 자제를 위한 노사 간 대타협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호봉제로 임금 매년 올라
개인의 성과에 관계없이 근속 연수가 쌓이면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호봉제와 경직된 임금체계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대표적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의 신입사원 대비 20년 근속 근로자의 임금 수준은 2.88배에 달한다. 독일(1.88배)이나 프랑스(1.35배) 등 유럽 국가는 물론 일본(2.55배)보다도 높다.
일본 도요타는 성과·직무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세계 1위 자리를 되찾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도요타는 2000년과 2004년 두 번에 걸쳐 호봉제를 폐지하고 회사·개인 실적과 직무 성격 등을 반영하는 임금체계로 개편했다.
도요타의 평균 임금은 2009년 811만엔에서 미국 대규모 리콜 사태가 발생하면서 실적이 악화된 2010년엔 710만엔으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794만엔으로 다시 올랐다. 기업 성과에 따라 인건비를 조절했기 때문이다.
독일 업체도 성과·직무 중심 임금체계로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독일은 금속노조(IG마텔)와 금속사용자협회의 협약을 통해 완성차·부품업체의 기본급을 결정한다. 기본급이 가장 높은 바이에른주가 연 4000만원 수준이다.
◆임금체계 개편 막는 강성노조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강성노조의 반발에 막혀 여전히 호봉제를 유지하고 있다. 성과급도 실적이 아닌 노사 합의로 매년 결정한다.
현대·기아차는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을 시도하고 있지만 노조는 근로자의 생활 안정성을 내세워 완전월급제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직무나 생산성에 상관없이 호봉제 기반의 정액임금을 받겠다는 것이다.
한국GM 노조는 오는 29일과 내달 1일 이틀에 걸쳐 조합원 대상 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할 계획이다. 한국GM이 지난해 1486억원 영업손실을 냈음에도 노조는 올해 임금·단체협상에서 기본급 15만9900원 인상과 성과급 500%(약 1300만원) 지급을 주장하고 있다. 연봉을 15% 높여달라는 요구다.
여기에 원화가 유로화와 일본 엔화에 비해 강세를 보이는 점도 자동차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유로화와 엔화에 대한 원화가치는 2013년 말보다 각각 13.7%와 10% 절상됐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직원의 역할과 능력, 성과에 따른 보상체계를 확립하고 개개인에게 일할 동기를 부여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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