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부르는 의료시스템
낮은 의료수가가 근본 원인
감염병 한달 치료에 건보지원금 1만890원
산모 자연분만 진료 수가, 애완견 분만비보다 낮아
평소엔 보험료 적게 내지만 대형 사고나면 대책 없어
[ 이준혁 기자 ]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을 진단·치료하는 감염내과가 환자 한 명을 30일 동안 입원시켰을 때 병원이 건강보험재정에서 감염치료 항목으로 받는 돈은 1만890원이다. 하루에 300원을 겨우 웃도는 수준. 원가에 턱없이 모자란다. 병원 경영 차원에서는 감염내과를 운영할 유인이 없다.
의료계 전반에 관련 전문의가 부족하고, 진단 장비가 부실한 근본 원인이다. 김영규 고려대병원 명예교수(내과)는 “한국 의료체계는 의무가입해야 하는 책임보험 하나만 달랑 든 저렴한 자동차보험과 같다”고 말했다. 평소엔 돈이 적게 들어가지만 큰 사고가 터지면 대책이 안 서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신종 감염병 유입 등 대형 의료사고에 대비해 지나치게 낮은 의료수가를 비롯한 의료체계 전반을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가 의료체계가 참사 원인”
메르스 확산의 구조적 원인에 대해 보건전문가들은 “모든 게 의료수가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낮은 수가에 끼워 맞춰 환자를 치료해 온 잘못된 관행이 빚은 참사라는 것이다. 황승식 인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저(低)수가 정책은 병원이 적정 의료인력을 고용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결국 보호자가 직접 간병을 함으로써 병원 감염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사태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메르스 감염의 온상이 된 응급실도 마찬가지다. 경기의 한 중소병원 원장은 “환자가 응급실에 하루 묵는 비용(치료비 제외)은 1만원 정도”라며 “사정이 이러니 심(心)정지에 쓰는 전기충격기를 교체하기가 쉽지 않고, 각종 혈액검사도 야간에는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감염병에 취약한 환자들이 몰려 있는 중환자실도 예외는 아니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상급종합병원(진료과목 20개 이상인 종합병원)의 경우 중환자실은 병상 하나마다 한 해 8000만~1억원씩 적자가 난다”고 했다.
유독 한국에서 감염 속도가 빨랐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다(多)인실 병상’도 근원을 캐면 제값을 못 받는 국내 의료시스템으로 이어진다. 1인실 위주로 병원을 운영해서는 입원실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마저도 수익을 내지 못한다. 적자 규모를 줄이는 정도에 그친다. 엄중식 한림대 강동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감염 예방은 공간 격리가 핵심”이라며 “좁고 간소하지만 있을 건 다 있는 1인실로 입원 ?인프라를 바꾸고 건강보험 적용범위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대로면 제2메르스 올 수도”
메르스의 2차 진원지로 지목된 삼성서울병원에는 정식 음압병상(병원 내부의 병원체가 외부로 퍼지는 것을 차단하는 특수 격리병실)이 하나도 없었다. 음압병상은 운영에 상당한 공간과 인력, 전문성이 필요하다. 의료보험만으로는 운영비를 못 댄다. 특별한 국가적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병원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답이 금방 도출된다. 국가지정 격리병원이 아닌 삼성서울병원으로선 부담이 됐을 것이라는 후문이 나오는 이유다.
‘헐값 의료비’로 인한 폐해는 의료계 곳곳에서 목격된다. 자연분만 시 국민건강보험 진료수가는 최저 20만3000원이다. 동물병원의 애완견 분만비 30만~40만원보다 낮다. 산모와 태아를 동시에 돌봐야 하는데도 맹장수술 진료수가인 27만4000원보다 적다. 미국과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다.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산부인과 전문의)은 “분만실은 응급실처럼 의료진이 24시간 상시 대기하는데, 인건비나 응급수당 등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고 했다. 허대석 서울대의대 내과학교실 교수는 “낮은 수가를 바탕으로 한 건강보험제도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 의료수가(醫療酬價)
의사 등이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와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는 돈을 의미한다. 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정도와 물가상승률 등을 바탕으로 매년 건강보험공단과 가입자단체, 의료계가 협상을 통해 수가인상률을 결정한다.
■ 184개
전국 음압병상 총 개수. 공기가 항상 병실 안쪽으로만 흐르도록 설계된 곳으로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필수 시설이다. 하지만 비용 부담이 커 대형병원들마저 설치를 꺼린다. 메르스 환자가 속출한 삼성서울병원에도 없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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