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기 IT과학부 기자 hglee@hankyung.com
[ 이호기 기자 ] 지난 1일 한 통신사의 ‘데이터 요금제’로 갈아탄 직장인 김모씨(34)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지상파 실시간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모바일 TV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말을 듣고 데이터 요금제로 바꿨다. 그런데 정작 모바일 TV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작동하자 이날부터 지상파 실시간 방송 콘텐츠를 볼 수 없다는 안내 문구가 떴다.
통신 3사는 지난달 9일 KT를 시작으로 최저 2만원대 요금으로 음성 통화를 무제한 쓸 수 있는 ‘데이터 요금제’를 앞다퉈 출시했다. 이들 3사는 기존 유료 서비스(월 3000~5000원)였던 모바일 TV를 무료 제공하기로 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이미 이때부터 ‘지상파 블랙아웃’은 예고돼 있었다. 지상파 방송사 측은 지난달 중순 통신 3사에 공문을 보내 모바일 TV에 재전송되는 실시간 방송 콘텐츠 사용료를 기존 1900원에서 가입자당 3900원으로 인상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6월1일부터 신규 가입자에 대한 콘텐츠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기존 가입자는 오는 11월까지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통신사들은 인상 폭이 과도하다며 이를 거부했다.
문제는 스마트폰을 새로 구매한 게 아니라 단순히 요금제만 바꾼 김씨와 같은 기존 가입자들도 피해를 보게 됐다는 데 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모바일 TV에서 지상파 채널(푹·Pooq)은 ‘플랫폼 인 플랫폼(PIP)’ 방식으로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며 “1일 이후 데이터 요금제로 갈아탄 기존 고객들도 푹의 신규 가입자로 분류돼 실시간 방송 콘텐츠를 볼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상파 방송사와 통신사 간 신경전 탓에 소비자만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요금을 갑자기 두 배로 올리겠다는 지상파 방송사도 그렇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도 데이터 요금제에 가입하면 유료 방송을 무료로 제공한다고 홍보한 통신사도 무책임하다는 지적이다.
2년 전 약 80만명에 불과했던 유료 모바일 TV 가입자 수는 최근 500만명을 훌쩍 넘겼다. 이들 고객을 볼모로 지상파 방송사와 통신사가 콘텐츠 가격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치킨 게임’을 벌인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호기 IT과학부 기자 h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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