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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메르켈의 참회와 아베의 역사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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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범죄 반성 않는 역사왜곡 日
전후 70년 사죄 이어온 독일처럼
미래세대 그르치지 않는 길 찾아야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



한·일 양국은 경제적으로나 안보상으로나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는 이웃이다. 민감하고 유동적인 현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풀어 나가기 위해서도 그렇다. 그런데 한·일 관계가 갈수록 꼬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정상회담을 요구하면서도 과거사 왜곡에 누구보다 더 적극적이다. 말은 만나자면서도 행동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지 않자 결국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한·일 관계의 격을 낮췄고, 이에 휘말려 양국 국민들도 적대감을 키워 가고 있으니 정말 걱정스럽다.

문제의 근원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다. 아베 총리 등 많은 일본인들은 일본의 패전을 반성할 과거사가 아니라 힘이 모자라서 당한 분한 굴욕으로 받아들인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원폭기념관은 원폭의 가공함과 함께 일본만이 원자탄을 맞은 유일한 나라임을 부각시킨다. 일본은 평화를 파괴한 전범이 아니라 패전으로 그렇게 낙인찍힌 피해자일 뿐이라는 메시지가 도처에서 감지된다.

히로시마에 투하?원폭은 순식간에 10여만명의 인명을 몰살시켰다. 그런데 그 직전의 오키나와 전투에서는 일본군의 옥쇄 강요로 10여만명의 민간인이 죽었고 미군 전사자도 석 달간 1만2000여명에 이르렀다. 일본 본토의 저항은 이보다 훨씬 더 가열할 것이 분명했기에 미국으로서는 막 개발을 끝낸 원자탄을 투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베 총리의 조부는 최후의 조선총독이었고 외조부는 전범 조사를 받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패전의 굴욕을 철저히 맛본 이들의 분한 정서는 고스란히 후대에 전달돼 이제 일본은 학교 교육까지도 내놓고 과거사를 왜곡하고 있다. 그 결과 현세대의 일본인들은 일제가 한국과 중국에서 자행한 만행은 모르면서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있지도 않았던 일을 날조해 국제사회에 모략한다’고 증오하기에 이르렀다.

일본 지도부가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까닭은 스스로 전쟁범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스쿠니 참배는 한국과 중국을 침략하면서 일제가 저지른 극악한 범죄가 과장 날조된 것이라야 정당화된다. 그런데 일본이 자신의 명백한 전쟁범죄를 허위 날조라고 부인하면 일제의 일방적 침략에 무너지고 유린당한 한국인과 중국인들의 분함은 더 커진다.

일본과 대조적인 것이 독일이다. 독일은 전후 70년간 수시로 유대인 대학살의 전쟁범죄에 대해 사죄하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일본을 보다 못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진정한 사죄 없이는 주변국과 화해 협력하기 어렵다”고 충고했다.

어느 나라도 더 이상 사죄를 촉구하지 않는 지금까지도 독일이 사죄를 되풀이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독일 지도자들의 끊임없는 사과는 자신들의 아들딸들을 상대로 한 것으로 보인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인들은 지금의 일본인들과 같은 종류의 분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당시 하사였던 아돌프 히틀러는 서부전선의 참호에서 항복 소식을 듣고 피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베르사유조약은 독일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리한 전후 배상을 강요했는데 영국 대표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또 다른 전쟁 발발을 염려할 정도였다. 과연 독일인들의 분함은 더 큰 적개심으로 불타올라 결국 민주적 선택으로 히틀러의 나치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독일인들의 분노가 불러온 것은 또 하나의 패전, 수많은 인명과 방대한 영토의 상실, 홀로코스트의 참극이었다. 지금도 이어지는 독일 지도부의 사죄는 그들의 미래 세대들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바라는 끊임없는 기원이다. 그런데 일본은 조상의 잘못을 미화하기 위해 그들의 미래 세대를 크게 그르치는 중이다.

아베 총리는 흡족했을 미국 의회 연설이 결국 세계 역사학자들의 집단적 우려를 촉발했고 일본 역사학자들까지 대거 동참했다. 혹시 아베 총리는 일본의 미래 세대가 선대의 복수를 해 주길 바라는가. 일본은 분명 초강대국이지만 그 복수가 가능할까. 이제 그의 종전 70년 담화는 세계적 관심사가 됐다.

이승훈 <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 shoonlee@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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