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야 미치는(不狂不及) 경지는 물아일체의 몰입이다. 고수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지만 외롭기 그지없다. 여암 신경준(申景濬)도 그랬다. 지리학에 미쳐 마침내 영조의 눈에 띈 천재의 눈에 조선의 국토는 초라했다. 나그네의 구전과 옛 기록에 기댄 오류투성이의 지리 데이터는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몰아갔다. 그의 밝은 눈에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하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실현은 국토 빅데이터인 도로의 정립에 있었다.
사람이란 머물기도 하고 다니기도 한다. 머물면 집이요, 다니면 길이다. 맹자는 ‘인(仁)은 편안한 집이고, 의(義)는 바른길이다’ 했다. 이는 집은 나 혼자만의 것이고, 길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곳이니 길 위에서 사람 사이 일들이 생겨난다는 의미다. 사람 사이 일이란 곧 상업(商業)이다. 상업은 신의(信義)의 길 위에서 피어나는 경제활동이다. 이것이 실학자 여암의 도로고(道路考)가 탄생한 궁극적 이유다.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가. 퇴근 시간 하늘에서 바라본 차량의 흐름은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방향성을 지닌 인체의 혈맥과 같다. 동맥에서 모세혈관으로 흘러 더 작은 경로를 따라 부채꼴로 퍼져나간다. 이렇게 관심의 장소인 지갑이 열리는 곳으로 사람을 데려가는 요소(factor)는 다름 아닌 길이다. 그들의 길은 주인은 없지만 오직 그 위를 다니는 사람들이 주인인 탓에 길은 사람을 따른다.
사람의 움직이는 기운은 흙길을 물길로도 만든다. 흐름인 까닭이다. 사람의 수가 좌표의 방향성과 굵기와 길이를 가진 살아 움직이는 흐름의 대소를 결정한다. 만일 상업을 위한 입지를 구한다면 그 흐름 속에 해답이 있다. 물이 모이듯 사람이 모이는 곳을 찾아라. 풍수학에서 물이 곧 재물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현명한 이라면 지금 당장 도로지도를 펼치면 된다. 그리고 지역의 관심장소(interest place)로 향하는 사람의 흐름을 바람(風)의 풍량계 부호를 사용해 표시해 보자. 일터로 가는 근로교통, 삶의 편의를 위한 주거교통, 특정 거래 지역을 위한 장거리교통만 보아도 물길의 흐름 즉 돈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에 계획도로의 첨삭은 보물지도가 된다.
한데 풍수학에서 도로는 ‘초록은 동색이 아니다’. 도로마다 종류에 따라 제각각의 특성이 있다는 말이다. 도로는 곧 물이라 했다. 물의 성품을 그대로 닮아 유(流)하여 찌르고 도망가고 막다르면 불행하다. 곡(曲)하여 뱀처럼 유연하고 구불거리며 다가오면 행운을 부른다. 주거, 상업, 산업부동산의 모든 도로에 적용되는 원리다. 물은 검고 맑다. 따라서 과해서 깊으면 욕망으로, 부족해서 얕으면 결핍의 재물이 된다.
300년 전 ‘부국의 길은 도로(道)에 있다’고 미친(及) 여암은 말했다. 미쳐서 미친 이의 말은 백두산 너머에 여전히 이르러(至)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고 있다.
강해연 < KNL디자인그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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