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은퇴자들의 노후 전략
노후대책, 뭉칫돈보다 월소득 만들기에 초점을
인간은 합리적일까 비합리적일까. 길을 걷다 우연히 5만원짜리 지폐를 주웠을 때와, 반대로 지갑에 있던 5만원짜리 지폐 한 장이 사라졌을 때를 상상해보자. 그리고 이 두 가지 이벤트가 주는 충격의 크기를 비교해 보자. 5만원을 주웠을 때의 기쁨과 반대로 5만원을 잃어버렸을 때의 충격, 과연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의 잔상이 더 오래 남는가. 아마 대부분의 경우 후자의 기억이 더 오래 남아 있을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이득보다 손실을 더 중시하는 손실 회피의 본능적 습성이 크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Kahneman & Tversky)는 인간의 손실 회피 성향을 연구하는 논문에서 ‘50달러의 손실로 인한 고통이 50달러 이익으로 인한 기쁨보다 두 배 이상 컸음’을 증명하고 있다.
투자는 충분히 도전적인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은 감정적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합리적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객관적인 정보를 이용하기보다는 오히려 자 탔?감정에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무료 재무설계 서비스 활용해야
생각해보면 인생이라는 포트폴리오는 꽤 오랫동안 관리해야 할 장기 프로젝트다. 성공적인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서는 재무적, 비재무적 전략을 잘 수립하고 지속적인 노력과 실천이 수반돼야 한다. 사회로 진출하는 30대와 자녀양육의 부담이 큰 40대에는 돈을 불리는 재무 포트폴리오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은퇴를 준비하는 50대 이후는 남은 인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비재무적인 계획도 신중하게 준비해야 한다.
인생 포트폴리오는 한 번 실패하면 원상태로 되돌리기가 만만치 않다. 한두 번 성공해서 큰 돈을 벌었다 하더라도 자칫 무리한 투자로 실패할 경우 그 충격은 성공했던 기쁨의 두 배가 되어 남은 삶의 시간을 무겁게 지배하기 때문이다.
재무적인 부분은 금융회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재무설계 서비스를 이용해보는 것도 좋다. 자산관리 중심으로 변화되는 금융의 패러다임을 위해 금융회사마다 첨단의 재무분석, 은퇴설계, 포트폴리오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은퇴까지 몇 년의 시간이 남았으며, 현재 자산은 얼마고, 은퇴 후 삶의 수준을 대충 입력하면 은퇴준비 금액까지 아주 구체적으로 계산해준다. 게다가 개인의 투자 성향과 기대수익률에 맞는 최적의 금융상품 포트폴리오 제안은 덤이다. 다만 계량적 분석을 통해 계산되는 결과는 항상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다. 목을 죄는 학원비와 생활비에 적금 붓기도 빠듯한 형편인데도 은퇴 전까지 몇 억원을 모으란다. 그래야 희망하는 삶의 수준으로 살 수 있다고 설명하기 때문이다.
◆목돈보다 월소득으로 노후준비해야
앞으로는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한다. 혹자는 ‘1억원 만들기’ 또는 ‘10억원 만들기’의 꿈을 꿀 수도 있지만 현실을 냉정히 되돌아봐야 한다. 뭉칫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보다 노후 생활 수준에 맞는 월소득 개념으로 계획해야 한다.
예를 들어 매월 150만원 또는 200만원의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계산해보자. 선진국의 3층 보장제도(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와 마찬가지로 정부에서 운영하는 국민연금으로 노후 생활비의 50% 수준을 담보하고, 그 다음으로 현재 직장의 퇴직연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살펴보자. 아직 은퇴까지 10년 이상 남았다면 예금, 채권보다 연금저축과 같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성과가 기대되는 상품으로 전환해 내 노후생활비의 나머지 30%를 책임지도록 설계해야 한다.
그리고 남은 여유자금이 있다면 마음껏 굴려도 좋다. 주식을 하든, 펀드를 하든 마음 편하게 운용할 수 있다. 이미 내 노후의 80%는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으로 든든하게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과의 돈독한 관계도 필요
비재무적 측면은 남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준비다.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은퇴 환경을 비교해보면 사회적 인프라나 복지는 일본, 한국, 중국 순이다. 일본은 은퇴자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나 사회적 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다. 그렇지만 은퇴한 50대 이후의 자살률은 일본이 제일 높다. 개인적 성향이 강한 홀로 세대의 고독이 그 원인이다. 일본은 치매환자가 많다. 일본 노인들은 잘 움직이지 않고 TV 앞에 앉아 기계적으로 리모컨을 돌리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커튼을 내린 채 은둔적인 외톨이로 집안에서만 오간다.
반면 한국과 중국은 공원문화가 살아있고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하기를 좋아한다. 이곳저곳을 기웃대기도 하고 집 밖에서의 활동공간을 찾으려는 노인 인구가 많다. 이웃과의 일상 교류도 잦은 편이어서 해질녁까지 공원을 터 삼아 노후생활을 보내는 이가 많다. 경제적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노후의 힘겨움을 덜어내는 것이다. 돈을 쓰지 않는 인생 즐기기의 실천인 것이다.
그렇다고 하릴없이 공원 라이프를 노후의 비재무적 대안으로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기쁘게 해줄 수 있는 그것을 통해 삶의 보람을 찾는 것이다. 더불어 크지는 않지만 수입까지 생길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즐거움도 없을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재무설계사 미치 앤서니는 그의 책 ‘새로운 은퇴 심리학(The New Retirementality)’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마시고, 골프나 치며 노후를 보내겠다는 꿈은 꿈이 아니라 죽음으로 가는 막다른 골목이다.’
아무리 넉넉한 금융자산이 있다 하더라도 무료한 삶의 시간을 이기지 못하는 노인들이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고 그는 말한다. 돈이 많으면 인생이 힘들지 않다. 편안하다. 하지만 노후의 행복이 통장 잔액과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은퇴까지 몇 억원을 모으겠다는 비현실적인 꿈보다는 차라리 노후에 즐길거리를 지금부터 찾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준비하고, 업무 외 인연을 뮌?만들어 은퇴 뒤에도 만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둬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까지 벌 수 있다면 다가올 고령화 은퇴천국 시대에 가장 완벽한 은퇴 준비가 될 수도 있다.
◆부담스러운 꿈보다 실패 최소화를
내 가족의 미래 설계는 실패를 최소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미래가 불안하다 하더라도 단기간에 돈을 벌겠다는 욕심으로 성향에 맞지 않는 위험한 상품에 대한 단기적인 투자는 바람직하지 않다.
무작정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아름다운 노후를 위해 차근차근 쌓아가는 방법을 찾아보자. 무리한 투자로 돈을 버는 찰나의 기쁨보다, 손실이 났을 때의 충격은 그 이상이다. 100세 시대, 내 소중한 삶을 위한 기초를 하나하나 챙겨나가는 보장제도를 다시 살펴봐야 할 때다.
이정걸 < 국민은행 잠원동지점 부지점장 nyorker@kbfg.com >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