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도입해 열심히 일한 한국
포퓰리즘 정책에 기업가 정신 쇠퇴
비대해진 정부의 권력부터 줄여야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
‘경제발전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기 위해 지난달 하순 독일에 다녀왔다. 독일에서 만난 한독간호협회장의 말이 가슴을 울렸다. “우리는 여기에 가족을 위해 왔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조국 대한민국을 잊은 적이 없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렇다. 해방 후 그 세대는 그렇게 가족을 위하고, 대한민국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살았다. 그런 국민의 노력, 피와 땀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해방 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했다. 전쟁도 겪었다. 6·25전쟁 직후 국내총생산(GDP)은 13억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67달러에 불과했다. 그랬던 대한민국이 지금은 국내총생산이 1조4000억달러, 1인당 국민소득이 2만8000달러에 달하는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무엇보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내고, 원조를 받는 국가에서 원조를 주는 국가로 전환한 유일한 국가가 됐다.
이런 경이적인 대한민국 ?경제발전에는 세 가지 요인이 복합돼 있다. 정부가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했고, 기업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투자했으며, 국민은 나와 내 가족의 삶은 내가 책임진다는 정신으로 열심히 일했다. 우리나라에 시장경제 체제가 도입된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다. 식민지에서 독립한 대부분 신생국가는 사회주의 체제로 갔지만, 우리는 이승만과 박정희라는 불세출의 리더들 덕분에 시장경제를 도입했고 발전시켰다.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 이병철, 정주영 등과 같이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투자하는 기업가가 대거 등장했다. 일자리를 만들고 기술을 발전시키며 조그만 기업들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 나갔다.
그러나 무엇보다 국민이 열심히 일한 결과였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의 광산과 병원에서 고된 노동을 해 번 월급의 대부분을 송금한 파독 광부와 간호사,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외화를 벌어 온 파월 장병과 상사 직원, 열사(熱沙)의 땅 중동에서 열악한 근무환경을 극복하며 구슬땀을 흘린 건설 근로자, 쪽잠을 자며 재봉틀을 열심히 돌린 구로공단 여공 등 일반 국민은 가족의 삶은 내가 책임진다는 자기 책임의 자세로 열심히 일하며 저축했다. 이런 국민의 자기 책임 의식이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한민국이 지금 장기 침체에 빠지고 성장 동력을 잃어가며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시장경제 체제를 강화하기보다는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며 반(反)시장적인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그 결과 기업의 투자가 줄고 기업가 정신이 쇠퇴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나와 내 가족의 삶은 내가 책임진다는 근로의식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라면 대한민국은 아르헨티나나 그리스와 같은 국가로 전락할지 모른다.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보면 국가 실패의 원인은 착취적 정치·경제 구조에 있다. 착취적 구조는 독재국가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나온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착취적 구조가 나오는 것은 포퓰리즘 정책 때문이다. 포퓰리즘 정책은 국민의 정서를 통해 확산되는데, 그 근원은 정부 권력의 비대함에 있다.
정부 권력이 비대하면 사람들은 그 정부 권력을 이용하려고 한다. 자기 자신이 열심히 일해 보상받기보다는 정치적 활동을 통해 보조금이나 특권을 얻어 이익을 보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을 남발하고, 자신들을 지지한 개인과 집단에 여러 가지 특혜를 제공한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한 지대(地代)추구 행위가 만연하고, ‘성완종 사건’과 같은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이유다.
대한민국의 성공 신화는 계속돼야 한다. 실패해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와 내 가족의 삶은 내가 책임진다는 국민의 ‘자기 책임의 정신’이 회복돼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비대해진 정부의 권력을 줄여야 한다.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jwan@kh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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