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3년차 맞아 지원책 구조조정 나선 한정화 중소기업청장
혜택 끊길까 中企에 머무는 '피터팬 증후군' 막기 위해
중견기업 공공구매 입찰 참여기간 연장 검토
저금리 정책자금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 퇴출
실패 기업인 재기돕는 '성실실패 인증 법안' 5월 국회 제출
[ 김용준/이현동 기자 ]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557개에 이르는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평가해 비슷하거나 겹치는 사업을 통합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중견기업이 되면 각종 혜택이 사라져 중소기업에 머무르려 하는 ‘피터팬 증후군’을 막기 위해 공공기관 입찰 참여 기간 연장 등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말로 취임 3년차를 맞은 한 청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소기업 정책 전반에 관한 의견과 계획을 상세히 설명했다. 최근 국회 본회의가 끝난 뒤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한 청장을 만났다.
▷‘피터팬 증후군’ 문제가 심각한가요.
“2012년 중견기업이었는데 2013년 중소기업으로 돌아간 회사가 74개나 됩니다. 57가지 지원을 받다가 갑자기 16개의 새 恝?규제를 받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지요. 그래서 꼭 필요한 연구개발 등의 지원은 계속 받을 수 있는 ‘점진적 혜택 축소(sliding down)’ 방식을 도입했지만 여전히 불만이 많은 상황입니다.”
▷추가 대책이 있습니까.
“중견기업이 되면 지원이 뚝 끊기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올해 상반기에 종합 정비계획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중소기업의 반발이 있긴 하지만 공공구매 참여 기간 연장 등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중견기업 육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후진국일수록 영세사업자, 중소기업이 많습니다. 인도네시아는 5000만개나 된다고 합니다. 소득이 올라가면 이 숫자가 줄어듭니다. 경쟁력 있는 중견기업이 늘어나 사업과 고용을 흡수하기 때문이지요. 한국은 경제가 성장해도 영세업자, 중소기업 숫자는 줄지 않고 있습니다.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중소기업은 고용 여력이 없습니다. 대기업 매출이 늘어도 고용은 해외에서 일어납니다. 중견기업의 성장만이 중소 영세업체 과밀화, 낮은 경쟁력, 고용 등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중견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비관적이지는 않습니다. 창업 5~10년 사이에 매출이 500억원으로 늘어난 회사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회사 창업자의 공통점은 한 분야에 오랜 기간 근무하며 기술력을 갖춘 이공계 출신들이라는 것이지요.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낮고 수출 판로를 다변화하는 것도 공통점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업체를 많이 키워내야 합니다.”
▷창업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성장 가능성이 큰 혁신형 창업보다 생계형 창업이 많습니다. 하지만 분위기가 나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창업하자마자 해외로 나가 성공한 기업도 있고, 해외에서 성과를 내고 국내로 들어오는 중견 화장품 제조업체 제닉 같은 기업도 있습니다. 청년창업사관학교 출신들이 개발한 제품을 보면 혁신적인 제품이 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창업기업이 곧장 해외에 나가 성공할까요.
“10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경쟁력이 없고 이미지도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한류의 영향도 있고, 대기업이 해외에서 선전하며 한국 제품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심어놓은 것도 중소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대형 유통업체와 중소기업이 힘을 합쳐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봅니다.”
▷‘제7홈쇼핑’도 창업기업 지원책입니까.
“그렇다고 봐야 합니다. 1년에 2만개 정도의 기술혁신 제품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 중 80~90%는 판매해보지도 못하고 사장되는 것이 현실이죠. 홈쇼핑 등 유통업체들이 잘 팔리는 검증된 제품을 팔아 수익을 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중소기업유통센터, 농협경제지주,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등이 참여하는 제7홈쇼핑은 중소기업에 기회를 주기 위한 것입니다.”
▷제7홈쇼핑 운영시 적자가 불가피할 것 같은데요.
“민간 홈쇼핑 회사들은 판매금액의 34%를 판매수수료로 받아 8%가 넘는 영업이익률을 올 ??있습니다. 판매수수료율을 20%로 낮춰도 제7홈쇼핑은 충분히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제품을 파는 중소기업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중기 지원 정책이 너무 많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부가 하는 지원사업만 557개나 됩니다. 중소기업이라는 말로 하나로 묶여 있지만 1인 자영업자부터 중견기업까지 광범위하고, 맞춤형 지원을 하다 보니 사업이 많아진 것이지요. 여러 부처가 각자 정책을 만든 것도 지원사업이 많아진 배경입니다. 앞으로 중복되거나 효과가 떨어지는 사업은 통합하고 조정할 것입니다.”
▷지원 효과가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실이 아닙니다. 매출 1000억원 넘는 벤처기업 453개가 나왔고, 중견기업도 3000개가 넘었습니다. 중소기업 지원이 일자리 창출 등 경제 성장에 충분히 기여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열심히 중소기업을 지원하면 그 효과가 납품단가 인상 등으로 대기업으로 흘러가는 문제가 있습니다. 낙수효과의 반대 현상이라고 볼 수 있죠. 어려울 때는 고통을 나누고, 좋을 때는 성과를 공유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
▷신용보증을 너무 늘렸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창업한 기업들이 3년쯤 지나면 자금사정이 어려워져 ‘데스밸리(death valley)’에 빠지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은행들은 보수적이어서 이런 기업에는 돈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죽게 놔두면 구조조정은 잘 되겠지만, 데스밸리만 통과하면 성장할 가능성이 큰 기업이 많다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보증을 장기적으로 줄여가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당 ?줄이면 죽습니다. 정책자금의 저금리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을 줄이고,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을 집중 지원하는 정책적 판단이 필요합니다.”
▷실패한 기업인의 재기를 돕는 방안은.
“정직하게 사업하다 망한 기업인은 신용불량과 대출제한 등의 규제에서 풀어줘야 한다는 게 기본 방침입니다. ‘성실실패 인증제’ 도입으로 족쇄를 풀어주기 위해 5월 중 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할 것입니다. 이런 기업인에 대해서는 채무를 조정해주거나, 조세 채무를 완화해주는 것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소기업 정책은 어떻게 가야 할까요.
“창조적 균형 정책이 필요합니다. ‘창조정책’은 청년들이 마음껏 창업에 도전해 성공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정한 경쟁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혁신 역량을 갖춘 유망 기업들이 실패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불공정 거래를 막고, 중소기업의 기술을 보호해주는 것이 균형 정책입니다.”
한정화 청장은…
“앞으로 기술은 더 싸지고 지식은 더 비싸질 것입니다. 우리는 기술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과 지식과 기술을 함께 갖고 있는 대기업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에 대비해야 합니다.”
최근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간부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냥 한 말이 아니라 독서토론을 마치면서 한 말이다. 이날 토론한 책은 스티브 사마티노가 쓴 ‘위대한 해체’였다. 한 청장은 취임 뒤 줄곧 독서토론회를 하고 있다. 매주 열리는 간부회의 두 시간 중 한 시간이 토론회에 쓰인다. 현안에만 매달리다 보면 미래를 볼 수 없고, 정책도 단기적인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간부들은 초기엔 냉소적이었다. “일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책을 언제 읽나, 교수 출신이라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 청장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11년간 연구원으로 일하다 1989년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가 됐다. 한국벤처연구소 소장, 한국중소기업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간부들의 불만에도 한 청장은 독서토론회를 고집했다. 2년이 흐르자 간부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최근 회의에 참석하기 시작한 한 서기관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뭔가 담 너머에 있는 것을 보게 해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청장은 책에서 정책적 시사점을 끌어내는 것도 잊지 않는다는 게 중소기업청 간부들의 전언이다. 손꼽히는 벤처 전문가인 한 청장은 ‘초일류 기업으로 가는 길’, ‘벤처 창업과 경영 전략’, ‘불황을 뚫는 7가지 생존 전략’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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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년 광주광역시 출생 △1973년 중앙고 졸업 △1977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83년 미국 조지아대 경영대학원(MBA) 졸업 △1988년 경영학 박사(미 조지아대) △1989년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1999년 한국벤처연구소 소장 △2005년 한국중소기업학회 회장 △2010년 한국인사조직학회 회장 △2013년 중소기업청장
김용준/이현동 기자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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