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투자·독립경영 보장
작년 46만6000대 팔아
본사 있는 스웨덴 판매 추월
중국산 볼보, 미국에도 수출
[ 나수지 기자 ]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
2010년 중국 자동차기업 지리의 모기업인 지리홀딩스가 볼보를 인수했을 때 시장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지리는 1986년 냉장고 공장에서 출발해 1990년대 말에야 중국 정부로부터 자동차 제조 승인을 얻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다. 인수 당시 볼보의 매출은 지리의 20배가 넘었다. 리수푸 지리홀딩스 회장 스스로도 볼보 인수를 ‘세계적인 영화배우와 중국 소작농의 결혼’에 빗댔을 정도다.
자동차업계의 인수합병은 대부분 끝이 좋지 못했다. 자동차 브랜드가 다른 곳에 인수되면 브랜드 가치가 떨어져 판매가 부진해졌다. 제너럴모터스(GM)가 인수한 사브는 재매각됐다. 포드가 볼보를 지리홀딩스에 재매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 때문에 랑셴핑 홍콩중문대 석좌교수는 지리홀딩스의 볼보 인수 당시 “볼보는 북유럽의 미녀가 아니라 이혼녀”라고 비꼬기도 했다.
◆고래를 살린 새우
그러나 새우(지리홀딩스)는 고래(볼보)를 살렸다. 지리홀딩스가 인수한 뒤 볼보의 자동차 판매는 크게 늘었다. 2009년 33만4500대에서 2010년 37만3525대, 지난해에는 46만6000대까지 늘었다. 영업이익은 인수 다음해인 2011년 16억3600만스웨덴크로나(약 2126억원)에서 지난해 22억5200만스웨덴크로나(약 2920억원)로 훌쩍 뛰었다.
중국에서의 성장이 돋보였다. 2011년만 해도 중국(4만7140대)은 볼보의 세 번째 시장이었다. 지난해에는 1위로 올라섰다. 전체 볼보차 생산량의 17.4%(8만1211대)가 중국에서 팔렸다. 볼보의 본사가 있는 스웨덴(13.2%)을 제쳤다.
‘안전하다’는 볼보의 이미지가 교통이 복잡한 중국에서 득이 됐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중국에서 자동차 사고 사망자 수는 10만명당 20.5명이다. 스웨덴(3명)이나 영국(3.5명)보다 훨씬 많다.
중국에서의 성장을 바탕으로 미국 진출에도 적극적이다. 볼보 중국 공장에서 만든 차는 중국산으로는 처음으로 이달 중 미국 수출을 앞두고 있다. 볼보 세단인 S60 1500대를 올해 미국에 수출한 뒤 내년부터는 연간 미국 수출량을 5000대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비결은 전폭적 투자·독립적 경영
볼보가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자금력을 앞세운 지리홀딩스의 전폭적 투자다.
지리는 볼보 인수 후 5년간 연구개발(R&D)에만 120억달러(약 12조8000억원)가량을 쏟았다. 연구개발은 잇따른 신차 출시로 이어졌다.
공장 증설 등 설비투자에도 적극적이다. 2013년 중국 청두에 한 해 12만대를 생산할 수 있는 자동차 공장을 세웠다. ‘미치광이처럼 일한다’는 리 회장에 대한 세간의 평가에 걸맞게 계획에서 실행까지 고작 2년이 걸렸다. 볼보는 미국에도 5억달러(약 5300억원)를 투자해 공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하고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
볼보의 독립적 경영을 보장한 것도 부활의 배경이 됐다. 리 회장은 볼보를 인수하면서 “지리는 지리, 볼보는 볼보”라며 양사를 형제관계에 빗댔다. 연구나 생산 분야에서 협력하되 브랜드 이미지는 따로 만들어나가겠다는 일종의 투트랙 전략이다.
하칸 사무엘슨 볼보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는 “지리홀딩스가 볼보를 인수한 뒤 안정적 경영이 가능해 볼보가 더 볼보다워졌다”고 말했다.
◆‘중국산 볼보도 안전’ 인식시켜야
볼보가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중국에서 생산된 차도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미국 CNN방송은 ‘중국산’은 미국에서 저렴한 의류와 전자제품뿐이라는 인식이 아직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볼보가 안전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 자동차시장의 ‘짝퉁’과 경쟁해야 한다는 점도 중국시장 확대를 꾀하는 볼보에는 부담 요인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짝퉁’ 문제가 자동차기업의 비용을 늘리고 있다”며 “이는 볼보에도 위협”이라고 분석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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