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익 기자 ]
조선 왕조 시작부터 일제 강점기, 근대화 시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는 600여년을 서울과 함께해 온 소중한 유산이 있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으로 주목받고 있는 한양도성이다. 서울시는 한양도성 구간을 걷기 코스로 개발해 더 많은 시민이 찾을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조선의 수도 한양을 지켜온 성곽이 역사의 숨결을 느끼며 산책하기 좋은 최적의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양도성은 조선의 수도 한양을 지키기 위해 주변의 산을 따라 지은 성곽이다. 내사산(內四山)으로 불리는 4개 산인 북악산과 인왕산, 남산, 낙산으로 이어지는 도성의 둘레는 18.6㎞에 이른다. 현존하는 세계 수도 성곽 중 가장 규모가 크다. 1396년(태조 5년) 1차 완공된 한양도성은 98일 동안 19만7400여명이 동원됐다. 당시 평지는 흙을 쌓은 토성, 산지는 돌을 쌓은 석성으로 지어졌다. 세종 때 개축을 통해 토성도 점차 석성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성벽 일부가 무너져 내리자 숙종 때 대대적인 보수와 개축을 단행했고, 이후에도 여러 번 정비했다. 성벽을 만들 때는 돌에 기록을 남겼다. 태조와 세종 때는 구간 이름과 담당 지역을 새겼고, 숙종 이후에는 감독관, 책임기술자, 날짜 등을 명기했다. 한양도성은 일제강점기와 도시화를 거치며 훼손되기도 했지만 상당 부분이 세월을 견디고 남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북한산 일대 성곽은 도시 경관과 자연이 어우러진 독특한 모습을 자랑한다.
도심 속 힐링 공간
한양도성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인공 구조물이다. 자연을 존중하는 우리 민족의 전통에 따라 산세에 어긋나지 않도록 자연스레 쌓았다. 이렇게 만든 성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차 자연의 일부로 자리잡았고, 문화예술의 원천이 됐다. 한양도성은 현존하는 세계 도성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됐다. 1000만이 넘는 인구가 거주하는 대도시에서 이런 규모의 옛 성곽이 남아 있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훼손된 구간이 있지만, 현재는 전체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정비됐다. 한양도성에는 사대문과 사소문이 있다. 북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숙정문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이 사대문이며, 서북쪽부터 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이 사소문이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된 상태다. 흥인지문 남쪽에는 도성 밖 물길을 잇기 위한 오간수문과 이간수문이 있다.
한양도성은 순성(巡城)길을 따라 하루에 돌아볼 수 있다. 서울시 한양도성도감은 내사산을 중심으로 한 백악·낙산·남산(목멱산)·인왕산 구간과 도성이 멸실된 흥인지문·숭례문 구간 등 6개 구간으로 나눠 걷기를 추천하고 있다. 각 구간에 맞는 도보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간단한 준비만 하면 한양도성을 따라 걸으며 도시와 자연을 함께할 수 있다. 가벼운 산책 복장과 운동화를 준비하고 배낭 속에 간식, 물, 여벌의 옷 정도면 충분하다. 겨울에는 날씨에 따라 장갑과 방한모, 아이젠을 챙기면 된다. 백악구간의 창의문~말바위 안내소 구간은 출입제한 지역이어서 방문하려면 신분증을 출입증과 교환해야 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 중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한양도성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한양도성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 완전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양도성은 문루와 성곽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 있어 축조 당시 조선시대 도성 형식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시기별 축조 형태와 수리 기술의 역사적 증거 및 기록이 함께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한양 사람들의 삶과 깊은 연관성을 지니면서 삶의 공간 중 하나로 기능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내년 1월 세계유산센터에 한양도성 등재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신청이 완료되면 내년 하반기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한양도성을 방문해 조사하게 된다.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등재 권고’ 판정을 내리면 이듬해인 2017년 6월 열리는 WHC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한양도성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가 아끼고 지켜야 할 유산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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