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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타임즈의 확대경] 알렉산더 다라크가 만든 '알파 로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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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트크라이슬러(FCA)의 지붕 아래에 있는 여러 브랜드 가운데 럭셔리를 추구하는 곳은 ‘알파 로메오’다. 그런데 알파 로메오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다라크자동차가 반드시 언급된다. 1855년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태어난 알렉산더 다라크는 기계 설계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는데, 그가 만든 여러 기계가 1889년 파리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기계 제작으로 명성을 얻은 다라크는 1891년 ‘글라디에이터 사이클’ 회사를 설립한 뒤 1896년 성공적인 매각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고 잠시 전기차 제조뿐 아니라 로터리 엔진에도 관심을 가지다가 같은 해 파리 인근에 다라크자동차를 설립했다.

다라크는 사람 대신 기계를 활용해 자동차 섀시를 만들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다라크 자신은 운전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근대 초창기 자동차 창업주 대부분이 자동차를 좋아해 사업을 펼친 것과 달리 다라크는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자동차를 만들었다. 1904년 프랑스 전체 자동차의 10%를 점유할 만큼 사업을 키웠다.

1905년 다라크는 여러 나라에서 열리는 자동차경주에 적극 참여해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이어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 다라크를 진출시켰다. 지금으로 보면 가?먼저 글로벌 사업에 나서 입지를 다진 것이다. 1906년 몇몇 이탈리아 자본가를 끌어들여 이탈리아에 다라크자동차를 설립했다. 프랑스에서 부품을 가져와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면 크게 성공할 것으로 확신했는데, 이때 생산된 차종이 다라크 8hp였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건너오는 부품의 품질 문제가 불거졌고, 결국 1908년 문을 닫았다. 무너진 다라크자동차는 1909년 당시 이탈리아 자동차 광이었던 카발리에 메로시와 그의 친구 안토니오 산토니에게 넘어갔고, 이들은 1910년 1월1일 롬바르다 자동차 제작사(A.L.F.A)를 출범시켰다.

그런데 자동차 마니아들의 열정에도 한계가 분명했다. 제품은 좋았지만 비싼 가격과 소비자를 외면한 상품성이 문제였다. 결국 재정난에 빠졌고, 1915년 니콜라 로메오가 알파를 인수했다. 로메오는 인수 후 군용차를 만들어 1차 세계대전의 덕을 톡톡히 누렸고, 전쟁 후에는 승용차 사업에 진출하며 알파 엠블럼에 로메오(Romeo)를 덧붙였다. 그게 바로 지금의 ‘알파 로메오’다.

FCA그룹 내에서 알파 로메오의 역할은 럭셔리 스포츠 세단이다. 알파 로메오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를 경쟁 브랜드로 지목한다. 몇 해 전 이탈리아 알파 로메오를 찾았을 때 해외 수출 담당은 경쟁자로 아우디를 직접 지목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곧 보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물론 한국에서 알파 로메오는 아직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북미 진출이 늦어지면서 비슷한 기준을 적용하는 한국이 순위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지금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돛纛?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났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른바 ‘이탈리아 럭셔리’가 독일의 아성을 넘을 수 있을지 무척 궁금하다.

권용주 < 오토타임즈 기자 soo4195@autotime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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