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미 기자 ] 원화와 엔화를 직접 거래하는 외환시장은 없다. 원·엔 환율은 원·달러 환율과 엔·달러 환율로 계산한 숫자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 숫자는 중요한 시기마다 한국 경제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발휘했다. 엔저는 수출 기업에 타격을 줘 경상수지 적자를 부르기도 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엔저 영향을 유심히 살피는 것도 이 같은 ‘엔저 잔혹사’의 기억 때문이다. 대표적인 엔화 약세기는 2004~2007년이었다. 이 시기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달러 약세를 유도했고 원화가치가 급등했다. 2004년 1월~2007년 7월 원화가치는 엔화 대비 47% 급등했다.
엔저가 한창이던 2006년 초만 해도 낙관론이 더 많았다. 원화가치 상승은 선진국인 일본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달러 단위로 계산되는 1인당 국민소득 역시 끌어올릴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엔 세계 경제가 호황이었다.
엔저 충격은 한참 뒤에 나타났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경상수지가 2004년 323억달러 흑자에서 2008년 1~3분기 33억달러 적자로 전환했다”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때 한국은 극심한 불균형을 겪을 뻔했다”고 말했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시를 회고하면서 “엔저는 대체로 1년 뒤부터 경상수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당시 정부는 외환시장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폈다. 원화가치를 하락시키는 ‘고환율 정책’에 힘입어 다시 수출이 살아났지만 아찔한 순간이었다. 엔저가 심했던 1995~1996년에도 경상적자 폭이 80억달러에서 230억달러로 커진 적이 있다. 엔저가 극심할 때 외환당국 담당자가 ‘주시하고 있다’며 구두개입을 하는 것도 당시의 경험과 떼놓을 수 없다.
2012년부터 시작된 이번 엔화 약세는 조건이 더 좋지 않다. 호황기였던 2004~2007년과 달리 지금은 세계 교역이 부진한 침체기다. 각국이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통화 전쟁’에 돌입한 데다 일본 정부는 양적 완화를 통해 계속해서 엔화를 낮출 분위기다.
충격이 과거보다 작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노충식 한국은행 국제수지팀장은 “국내 기업들의 해외 생산이 늘어나 환율 영향이 줄었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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