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사신 따라/ 신선 뗏목 탔더니/ 날마다 봄놀이에 화려한 경물이라/ 날씨는 언제나 이삼월과 같아/ 산과 숲에는 사철 꽃 아니 끊이네.’ 청나라 문인 심복(沈復·1762~1808)이 사신으로 유구국(琉球國)에 가서 그곳 날씨와 풍광을 노래한 시다. 사랑스런 아내 운(芸)과의 애틋한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부생육기(浮生六記)’에 실려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유구국은 류큐(琉球)왕국을 가리킨다. 지금의 오키나와다. 1429년부터 통일왕국을 이뤄 동아시아 해상 중계무역으로 번성했다. 중국과 일본의 세력권에서 450여년을 지내다 1879년 일본에 병합됐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 왜구에게 붙잡혀 간 백성을 돌려보내주거나 우리가 사신(유구국통신관)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에 앞서 일본이 명을 칠 수 있도록 조선에 길을 빌려달라고 요구했을 때 명은 조선이 일본에 협력해 반란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는데, 류큐국 사신이 우리 편을 들어줘 오해를 푼 적도 있다.
오키나와 중심부인 나하에는 류큐 왕궁인 슈리성(首里城) 등 유적이 많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정한 ‘구수쿠 유적 및 류큐왕국 유적’ 중 구수쿠는 10여개의 옛 성(城)이다. 일본어로 성은 ‘죠’라고 읽고 훈독으로는 ‘시로’인데, 유독 오키나와 【??‘구수쿠’라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홍길동과 관련 있다고 말한다. ‘구’는 홍, ‘수쿠’는 집단을 뜻하니 ‘구수쿠’란 홍씨 집단이 거주하던 곳이라는 것이다.
야에야마박물관에 오야케 아카하치(洪家王)가 전해온 농기구와 화폐, 족보가 소장돼 있으니 그럴듯하다. 슈리성과 우라소에(浦添)성 터에는 ‘계유년에 고려 기와 장인이 제작하다(癸酉年高麗瓦匠造)’라고 쓰인 기와가 있다. 진도 용장산성 기와와 같은 것이다. 몽골군과 고려군에 맞서던 삼별초가 진도, 제주도를 거쳐 1273년 이곳으로 왔다는데, 그 해가 바로 계유년이다.
이곳은 이제 산호초와 맑은 물, 맹그로브 숲과 소철나무, 따뜻한 해류의 아열대 관광지로 유명해졌다. 2차대전 때 지상전에 휘말렸던 비극의 현장이지만 섬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연평균 기온이 22.7도로 사철 여행하기 좋고 4월부터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동양의 하와이’다. 최근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덕분에 더 인기다. 방사능 공포로부터도 멀다. 일본에서 가장 빨리 봄이 오는 곳, 1월부터 5월까지 꽃축제가 열리는 곳, ‘산과 숲에 사철 꽃 아니 끊이는’ 곳, 비행기로 두 시간이면 닿는 곳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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