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금융위원장 후보자가 한국 금융산업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했다. 어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금융산업이 양적·외형적인 측면에서는 많이 성장했으나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한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고 언급한 것이다. “저금리, 고령화, 금융과 IT융합 등 금융 환경은 급변하고 있는데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금융 개혁을 추진할 적기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위기라는 지적은 맞다. 급속히 다가온 저성장·저금리 시대에 은행 보험 증권 할 것 없이 수익 기반이 가라앉으며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자금 중개기능도 급격히 약해졌다. 하지만 결과로 나타난 위기 현상들이다. 위기를 맞게 된 근본 원인을 올바로 파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라도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상적인 비즈니스로는 금융업이 불가능한 토양을 앞장서서 만들어왔던 것은 바로 감독당국이다. 수시로 각종 정책금융이 동원됐다. 기술신용 기반의 ‘기술금융’ 대출만 해도 지난해 7월 1922억원에서 연말엔 8조9247억원으로 늘어났다. 목표 지상주의식 독려로 5개월 새 46배나 늘어나면서 통상적인 중소기업 대출은 크게 위축됐다. 올해 만기가 되는 40조원 규모의 개인대출을 장기·고정금리로 갈아타게 하겠다는 가이드라인도 나왔다. 자율적으로 ‘돈장사’ 할 여지가 없어졌다. 금융이 서민지원이나 개혁 슬로건의 하수인마냥 전락해버린 것이다.
시장원리만 무시된 게 아니었다. 주주권을 묵살한 채 사외이사의 권한만 키운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이나 CEO 후보의 선정사유 공개도 금융회사의 자율 경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KB금융의 LIG 인수에 대한 제동부터 5억원 이상 임원의 보수산정 세부기준 공개 지침까지 관치의 영역은 확대일로다. 이러고도 금융산업이 내실을 기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면 그게 비정상이다. 지금이라도 금융을 개혁하겠다는 의지는 좋다. 그러자면 위기를 초래한 진짜 문제점에 대한 진단에서 시작해야 한다. 금융위원회가 더는 금융의 지주회사처럼 행동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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