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침구 시장 패러다임 바꿔 불황 극복 이브자리 서강호 대표
[ 김낙훈 기자 ]
침구는 이불 요 등 단순한 제품이다. 하지만 서강호 이브자리 대표(65)의 생각은 다르다. 수면은 건강과 직결되고 좋은 수면을 위해선 침구가 과학적으로 디자인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철학으로 ‘슬립앤슬립’이라는 신개념의 브랜드를 내놓았다. 단순한 신제품이 아니라 침구시장의 판을 뒤흔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서강호 대표의 고향은 부산이다. 고향을 떠난 지 40년이 넘었지만 억센 사투리는 여전하다. 1973년 부산대 상과대학을 졸업한 뒤 1975년부터 삼성물산에서 일하기 시작해 2003년 상무로 퇴직할 때까지 꼬박 28년간 삼성그룹에 몸담았다. 그 뒤 한솔그룹으로 옮겨 한솔CSN 사장(2003~2009)을 거쳐 상담역으로 2011년 퇴직한 뒤 2012년 이브자리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브자리 창업자 고춘홍 공동대표(65·한양대 건축공학과 졸업)와 동갑이자 ROTC 동기다. 마라톤 애호가라는 점에서 記?공통점이 많다. 서 대표와 고 대표는 지금도 직원들과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며 종종 풀코스를 완주한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와 부드러운 이불사업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서 대표는 침구사업의 ‘판을 바꾸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불황을 극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시장을 분석하고 소비자 욕구를 파악해 적합한 대응책을 찾는 것이다. 시장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아예 ‘판을 바꾸는 것’이다. 이른바 ‘패러다임 시프트’다.
“지난해 5월 ‘슬립앤슬립(Sleep & Sleep)’을 시장에 내놓은 것은 이런 패러다임 시프트를 겨낭한 것”이라고 서 대표는 밝혔다. 그는 “이미 40개 대리점을 개설했고 연내에 이를 185개로 늘릴 계획”이라고 덧였다.
1976년 설립된 이브자리는 침구업체다. 연간 매출은 약 2000억원(대리점 판매 기준, 자회사 포함)에 이른다. 기존 이브자리 매장은 전국에 351개가 있다. 요즘 같은 경기침체기에는 대리점을 새로 여는 게 쉽지 않다. 더구나 이불과 요 베개 등은 불황 땐 당장 바꾸지 않아도 문제가 없는 제품들이다. 그런데도 사업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왜일까.
첫째, 침구시장에서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브자리의 서울 휘경동 전시장에 들어서면 한쪽 테이블 위에 사람의 등뼈 모형이 놓여 있다. 많은 사람이 의아하게 생각한다. 이불 코너에 왠 등뼈인가.
서 대표는 “수면은 건강과 직결되고 최적의 수면을 위해선 베개 등 침구가 과학적으로 디자인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최근 목디스크 환자 등 밤잠을 제대로 못자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여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잘못된 수면환경도 한몫한다”고 말했다. 이브자리는 2003년부터 업계 최초로 수면환경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선 수면자세와 침구가 수면에 미치는 영향 등을 꾸준히 실험하고 연구한다. 서 대표는 “특히 목과 척추의 건강을 위해서는 베개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사람마다 베개 높이가 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옆으로 누워 잠을 청하는 사람에게는 베개의 기능이 더욱 중요하다. 이 회사 수면환경연구소에서 국내 병원의 설문조사내용을 분석한 결과 평균적인 한국인의 약 58%가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잠을 청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똑바로 누운 자세는 35%에 불과했다. 베개의 주요 기능은 요와 머리, 목 사이에 생기는 틈을 메워주어 자연스런 몸의 굴곡을 유지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마다 체형과 수면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똑같은 베개를 베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옆으로 자는 사람은 베개에 반드시 직접 누워보고 고를 것”을 주문했다.
개인 맞춤형 수면 전문 브랜드 슬립앤슬립을 선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슬립앤슬립의 최대 차별점은 개인의 수면 습관에 맞춘 제품들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체험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전문교육을 받은 슬립코디네이터가 맞춤형 서비스를 통해 건강 증진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이불과 요 베개를 파는 기존 비즈니스와는 다르다.
서 대표는 “슬립앤슬립 매장에서는 이불, 베개, 매트리스와 같은 침구류 145종 외에도 최근 힐링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는 아로마 향초, 수면 안대 등 숙면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수면 소품 130종을 갖추고 한 자리에서 수면 관련 용품들을 고를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들 중에는 측면용 기능성 베개도 있다.
둘째, 글로벌 기업과의 전쟁이다. 서 대표는 “일본에서는 연간 베개시장이 약 1000억엔에 이르는데 이중 컨설팅을 통한 판매가 30%에 달할 정도로 이 시장이 활성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최근 이케아가 광명에 진출하면서 침구 등을 팔고 있고 글로벌 패스트패션(SPA)업체인 H&M이나 자라도 H&M홈 및 자라홈을 통해 국내 침구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어차피 글로벌시대에 거대 기업과의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서 대표는 “이브자리는 이런 추세가 올 것으로 오래전 예측하고 10년 이상 준비해왔다”며 “일본과 독일의 침구업체 베개전문업체들과 제휴해 다양한 제품 구색을 갖췄고 국내외에서 활발한 생산에 나선 것도 이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베개 제품은 일본의 도쿄니시가와에서 들여온 것이다. 450년의 역사를 지닌 니시가와는 일본의 간판 침구전문 기업이다. 과학적 분석과 연구를 통해 쾌적한 수면을 돕는 기능성 베개 등을 개발하고 있다.
소재도 다양하다. 예컨대 △먼지 발생이 적고 세탁이 쉬우며 위생적인 폴리에스테르 솜 △고온의 열기를 저장해 저온에서 방출하는 신소재인 ‘아웃라스트(Outlast)’ △폴리에스테르 섬유 가운데 4개 이상의 긴 구멍이 있어 가볍고 공기 함유량을 높인 프레시 헬스(어드반사) △거위털 양모 텐셀(유칼립투스의 펄프에서 얻는 섬유) 등 천연소재류다.
셋째, 해외시장 진출이다. 서 대표는 “국내 시장만 생각했다면 이렇게 준비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결국 해외의 큰 시장에 승부를 걸 것”이라고 말했다. 이브자리는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2곳을 비롯, 상하이 옌지 칭다오 광저우 등 중국 내 9곳 등 모두 11곳의 해외매장을 두고 있다.
서 대표는 “앞으로 매년 5개의 해외매장을 개설해 기존 침구류 및 맞춤형 제품 수출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를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침실전문 제조·유통업체로 자리매김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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