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쿠바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에게는 여자가 많았다. 23세 때 결혼했다가 몇 년 만에 이혼한 첫 부인 외에도 4명의 여성과 결혼하지 않은 채 관계를 맺었다. 첫 부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 외에 나머지 여성들과의 사이에서 8명의 자식을 두었다. 그 외에도 비공식 ‘여친’이 많았다. 심지어 암살 지령을 받고 접근했던 미인계 첩보요원이 그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얘기도 있었다.
50년에 걸쳐 세계 최장기 집권 기록을 갖고 있는 카스트로는 자신의 애정행각을 국가기밀 수준으로 다뤘다. 그래서 드러나지 않은 관계도 많다. 그의 ‘로맨스 혁명’은 결혼 이듬해 아들을 낳은 직후부터 시작됐다. 새신랑 티를 벗지 않은 그의 상대는 유부녀였다. 그녀는 훗날 ‘혁명 동지이자 연인’으로 불린 나티 레부엘타. 의사 남편을 둔 그녀는 카스트로에게 반해 자신의 집을 혁명 아지트로 제공했다.
카스트로가 정부군 습격에 실패해 투옥됐을 땐 열정적인 편지를 주고받았고, 출소한 그가 이혼하자 더욱 뜨거운 관계를 맺었다. 그녀는 딸 하나를 둔 유부녀 상태에서 둘째딸 페르난데스를 임신했다. 그러나 카스트로는 그 딸이 10살이 될 때까지 자기 자식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태어난 지 10년이 지나서야 아버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페르난데스는 쿠바의 정치 상황과 카스트로에게 환멸을 느껴 1993년 서방으로 망명했다. 2001년부터는 미국 마이애미에 정착해 언론인으로서 ‘독재자 카스트로’를 비판해왔다. 이보다 먼저 마이애미로 이주한 카스트로의 여동생도 오빠의 독재를 비난했다. 카스트로의 또 다른 딸과 친손녀, 외손녀도 그랬다. 둘째 며느리는 2002년 중남미로 망명하며 마이애미 방송국에 카스트로의 사생활 비디오를 폭로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카스트로는 ‘여복’보다 ‘여난’이 더 컸던 것 같다. 지난해에는 딸 페르난데스가 어머니의 건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망명 21년 만에 쿠바를 찾았다. 그 위독하던 어머니 나티가 지난 주말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젊은 공산주의 혁명가에게 반해 가정을 버리고 ‘쿠바의 여인’이 되려 했던 그였다. 딸 페르난데스가 배다른 카스트로의 아들과 사귀려 했을 때는 숨겨온 비밀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혁명가들의 낭만적 열정에 홀린 여성들이 예부터 많았으니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심지어 임꺽정에게도 부인이 셋이나 있었다지 않은가. 며칠 전 암살당한 넴초프도 그렇다니. 쩝, 쓴 입맛을 다시게 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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