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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경제] 시장경제의 수호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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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과 경제의 만남 (60)



2009년 8월, 부산지법 민사 14부(2009카합1295)는 분양이 완료되어 공사 중인 35층짜리 고층 아파트에 대해 15층 이상으로 지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유는 ‘일조권’이었다. 해당 지역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경우 기존에 있던 아파트 일부에서 햇빛을 볼 수 있는 시간이 1시간 미만으로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하고 그 피해의 정도는 참을 수 있는 한도 즉, 수인한도(受忍限度)를 넘어서는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해당 판결은 그 적정성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 있다. 다만 판결을 통해 판사가 보호하고자 했던 가치가 거주민의 ‘사유재산권’이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이처럼 사유재산권을 지키려 한 이유는 시장경제체제가 안정적으로 지속되기 위해서 반드시 보호되어야 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판사는 재판을 하는 사람이다. 법률에 근거하여 각종 분쟁을 해결하고, 심판을 내리지만 판결의 본질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는데 있다. 특히 그중에서 중요한 부분은 사유재산권의 보호다. 사유재산권은 시장경제체제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얼핏 판사와 시장경제는 양립할 수 없는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헌법에 명시된 판사의 역할을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 103조에서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유지 비극 막는 ‘사유재산 보호’

우리나라의 헌법은 국민이 누릴 자유권적 기본권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신체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등이 대한민국 헌법 제2장 10조에서 30조에 걸쳐 열거돼 있다. 그중에서 제23조는 재산권 보호의 원칙을 명확하게 나타낸다. 제23조 1항은 모든 국민의 재산권이 보장된다고 밝히며 재산권 보호의 일반원칙을 선언하고 있으며, 2항에서는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재산권 행사가 타인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3항에서는 재산권을 제한하거나 규제할 때는 반드시 정당한 보상이 뒤따라야 함을 명시해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있다. 시장경제체제의 근간이 되는 사유재산권은 법관이 판결의 대원칙으로 삼아야 하는 헌법에 의해 보호하는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인 것이다.

한편 헌법이 사유재산권을 보호하는 이유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공유의 비극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공유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이란 원래는 경제학의 개념이 아니었다. 생태학자 개릿 하딘(Garrett Hardin)이 과학잡지 「Science」에 기고한 글에서 설명된 개념으로서, 개인들이 이기심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공유자원이 무분별하게 사용되어 결국엔 고갈되고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비극적 과정을 표현한 개념이다.

사유재 인정, 사회 전체 이익 증가

경제학에서는 ‘공유지의 비극’으로 주로 소개된다. 여기서 말하는 공유지란 마을 공동의 목초지를 의미한다. 중세에는 마을마다 공동의 목초지가 있어서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의 소와 말을 몰고 가서 풀을 뜯어 먹게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목초지의 소유권이 개인이 아닌 마을 구성원 모두에게 있다 보니 풀이 새로 돋아날 새도 없이 빠른 속도로 풀을 먹이게 되었고, 그 결과 목초지는 황폐해져 아무도 풀을 뜯어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이를 두고 목초지와 같은 공유자원은 ‘배제성은 없으나 경합성은 있는 재화’라고 설명한다.

배제성이란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은 사용할 수 없게 하는 속성이고, 경합성은 한 사람이 더 많이 소비하면 다른 사람의 소비가 줄어드는 재화의 특성을 의미한다. 즉, 공유지(목초지)의 비극 현상은 경합성으로 인해 한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에 영향을 미치지만, 마을 공동의 소유인 탓에 사용할 수 없도록 배제할 수 없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면 이러한 비극을 막을 수 있다. 개인 양식장이 좋은 예이다. 우리에게 참치라고 불리는 참다랑어는 바다라는 공유지에 서식하기 때문에 누구나 잡을 수 있는 생물이다. 그 결과 공유지의 비극 현상이 발생해 점차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참치 가격이 갈수록 비싸지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산업화 이후 산란종 대어의 96%가 사라졌다는 통계는 참치 가격의 상승과 함께 공유지의 비극이 얼마나 큰 슬픔인지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광어나 우럭, 도미와 같은 해산물은 그 개체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는 양식이 가능한 어종이라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양식으로 인해 바다라는 공유지의 생물들이 사유재산화 되었고, 이로 인해 물고기를 무분별하게 잡는 일이 사라지게 되었다. 계속해서 물고기로 인해 이득을 얻어야 하므로 적절한 포획과 관리가 병행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유재산권을 인정하게 되면 개인의 이기심으로 인해 사회 전체에 불이익이 발생하는 공유지의 비극현상을 막을 수 있다.

공익과 사익 충돌시, 사리판단 역할

이 외에도 사유재산권을 보장해야 하는 경제적 이유들은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사유재산권은 자원의 효율적인 이용을 가능하게 한다. 사유재산권이 인정될 경우 기존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보다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에게로 자원의 이전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만약 재산권 보유자보다 낮은 가치를 부여한다면 팔 이유가 없으므로 자원의 이전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사유재산권이 전제되었기에 가능한 과정이다. 또한 사유재산권의 보장은 생산을 촉진시킨다. 지금은 지구상에 몇몇 국가밖에 남아있지 않은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일을 하는지의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배급을 받는다면 누구도 일할 유인(incentive)을 찾을 수가 없다. 힘들게 일한 대가를 보장해 줄 때 생산에 대한 의욕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헌법에서는 사유재산권을 보호하며 시장경제체제를 지켜나가고 있다. 그리고 판사들은 헌법이 제시한 시장경제의 가치를 지키며 법률적 양심에 따라 다양한 영역의 수많은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 물론 사유재산권을 보호한다는 것이 현실에서는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재산권이 충돌했을 때 어느 편도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유지를 그린벨트로 묶어 재산권 행사를 제한한다거나 스크린 쿼터 제도의 시행으로 영화사가 마음대로 상영영화를 결정하지 못하는 일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개별 사례들을 살펴보면 현실에서 사유재산권을 완벽하게 보호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백을 메우려는 판사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일조권 판결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지금, 긍정적인 면이 보다 크다고 평가되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과거에 비해 법경제학에 관심을 갖는 판사들이 많아진 점도 긍정적이다. 이러한 법관들의 노력으로 우리의 시장경제체제가 보다 탄탄해지기를 기대해본다.

■ 공유자원(common resource)과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

공유자원이란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만(비배제성), 한 소비자가 얻는 가치가 다른 소비자의 사용에 따라 감소(경합성)하는 재화를 말한다. 바닷속 물고기, 막히는 무료 고속도로 등이 공유자원에 해당한다. 공유지의 비극은 이러한 공유자원이 과도하게 사용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김동영 <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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