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엊그제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이런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한 것은 옳은 말이다. 그런데 김 대표의 이 지당한 말을 놓고 당·청 간 갈등의 폭발이라든가, 정부에 대한 당의 주도권 운운하는 언론보도가 잇따르고 있는 것은 재미있는 현상이다. 신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한 발 더 나갔다. 법인세든 부가세든 증세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거나 증세 없는 복지기조는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경계선에 서 있다. 여론이 기우는 방향을 엿보고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 지도부의 발언을 들으면서 언어혼란을 느끼게 된다. 정치가들은 언제나 국민의 건망증에 기대어 말한다는 사실도 잠시 잊을 뻔했다. 공약가계부가 파산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박근혜 정부가 공약가계부를 작성할 당시부터 충분히 예견됐던 바다. 비과세감면제도를 정비해 18조원을 더 걷겠다는 세입확충(총액 51조원)부터가 이미 파탄 났다. 지하경제 양성화(27조원)는 작년 자영업자 지원징세행정이 거론되면서 역시 물 건너갔다. 세출은 더욱 그렇다. SOC 감축 등 총 84조원의 감축안은 모두가 잊었다는 상황이다. 이 파탄 상태에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우리는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원내대표 같은 정치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 대표는 이번 연말정산 소동 과정에서 “소급을 해서라도 이미 걷은 세금을 토해내라”고까지 정부를 들이쳤다. 비과세감면 정비라는 큰 틀을 와지끈 무너뜨린 것은 바로 김 대표 자신이다. 김 대표는 세금 문제의 복잡성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유 원내대표는 아무래도 증세를 찬성하는 입장인 것으로 비친다. 세금도 더 걷고 복지도 보장한다는 말 속에는 지금의 복지수준에 대한 평가가 교묘하게 생략돼 있다. 기만적인 말투다. ‘지금의 복지수준만으로도 2050년이 되면 조세부담률이 48%에 이른다’는 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가 나온 지도 이미 3년이 넘었다. 여기에 4대 중증질환 보장, 무상보육, 기초연금 등 박근혜 정부 총복지로 따지면 아마도 그 시기는 2040년 앞으로 당겨질 것이다.
야당은 복지·세금 논쟁에 아예 고개를 모로 돌리고 있다. 복지 슬로건의 파탄은 정치인 모두가 직면할 재앙인 것이지, 이를 정쟁거리로 삼을 일조차 아니다. MB정부 5년 동안 중소기업 감세, 대기업 증세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올바로 인식하는 사람은 기획재정부 세제실의 기술자들 정도다. 아마도 세제실은 국가부채를 은밀하게 늘리는 편법으로라도 공약가계부의 차·대변을 대통령도 모르게 맞추어낼지 모르겠다. 증세냐 복지냐 하는 논쟁은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다.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며 편을 갈라 저질논쟁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위선과 거짓을 버려야 한다. 김무성 대표는 세금을 모르면서 권력투쟁부터 한다는 비판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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