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직원만 가입 익명 게시판
점심메뉴·휴직 등 사적 고민부터
민감한 사내 정보까지 올라와
[ 김보영 기자 ] 판교의 한 정보기술(IT) 회사에 근무하는 이모씨(30)는 수시로 스마트폰을 켜고 블라인드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사진)에 접속한다. 이 앱의 회사 게시판에는 사내방송 아나운서에 대한 얘기부터 점심 메뉴, 인사고과에 대한 고민 상담까지 다양한 글이 쏟아진다.
이씨는 “회사가 자체적으로 인터넷 익명게시판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 앱에 올라오는 내용이 훨씬 덜 정제돼 있어 재미있다”며 “회사 게시판보다 훨씬 자주 들어간다”고 말했다.
대기업 직장인 사이에 회사 익명게시판 앱인 블라인드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블라인드는 스타트업 팀블라인드가 만들었다. 현대자동차 SK LG CJ 포스코 등 국내 주요 그룹 계열사를 포함한 100여개 회사의 익명게시판이 개설돼 있다. 직장인들은 자신의 직장 이메일 아이디로 가입해 해당 회사 직원임을 인증받은 뒤 익명으로 자유롭게 글을 올린다.
이 게시판에는 점심 메뉴에 대한 고민부터 복지제도, 사내방송, 통근버스, 인사까지 다양한 화제의 글이 올라온다. 앱 안에 있는 동종 업계 여러 회사 사람이 모이는 ‘라운지’ 카테고리도 있다. 최근 IT업계 라운지에는 “(다음)카카오 사내 분위기는 어떤가요? 남자들도 육아휴직 쓸 수 있나요?” “연말정산…. 토해본 적 없는 1인” 등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 앱은 하루 이용자 수(DAU)가 회원 가입자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충성도가 높다. 가입자들이 블라인드 앱을 쓰는 시간도 하루 평균 20분에 달한다. 국내 페이스북 이용 시간과 맞먹는다. 네이버를 포함해 초기에 게시판이 개설된 회사 10여곳은 전체 직원의 80%가 가입해 있다.
직장인들이 블라인드를 찾는 이유는 가지각색이다. 공개적으로 묻기 난감한 질문이 생겼을 때나 회사 직원에게 묻고 싶지만 적임자를 찾기 어려울 때도 앱에 들어온다. 익명성 보장도 인기 비결이다. 한 이용자는 “사내 익명 게시판은 회사에서 들여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쉽게 마음을 터놓지 못한다”고 말했다.
블라인드는 최근 대한항공 ‘땅콩 회항’으로 입소문을 탔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비행기를 돌린 일거수일투족이 폭로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여서다. 일부 대기업에서 블라인드 앱 ‘주의보’가 내려진 이유다. 비공식적으로 전담 팀을 꾸려 해당 회사 게시판을 모니터링하고, 일부 기업에서는 추가 가입 자제 요청을 직원들에게 권고하기도 했다.
팀블라인드를 창업한 문성욱·정영준 공동대표는 “기업 비밀을 폭로하는 장이라기보다는 사내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만들었다”며 “기업이 팀블라인드에 직접 접촉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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