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부다페스트는 큰 도시다. 동유럽 도시 중에서도 가장 크다. 서울과도 거의 맞먹는 크기의 이 도시를 며칠 만에 둘러보기란 어렵다. 처음엔 유명 관광지를 중심으로 돌아다니며 지역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좋다. 도시의 윤곽이 어느 정도 그려졌다면 이제는 좀 더 도시의 골목으로 들어가 볼 차례다.
세련된 펍과 빈티지 숍이 가득한 키라리
가장 좋은 이동 수단은 역시 지하철과 트램이다. 아침 출근시간 부다페스트의 지하철은 서울과 마찬가지로 무표정한 얼굴의 헝가리인들로 가득하다. 게다가 그들이 타고 오르내리는 지하철의 에스컬레이터는 놀이기구만큼 빠르다. 서울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에 흠칫 놀라기 마련. 낯선 이방인에게 살갑지 않은 그들의 표정과 바쁜 발걸음이 오히려 친근함을 준다. 서울에서 늘 보던 익숙한 풍경이라서 그랬을까.
데악광장역(Deak Ferenc Ter)에서 내리면 페스트 지역의 번화한 곳 중 하나인 키라리(Kiraly) 거리를 만날 수 있다. 현지인들이 즐겨 가는 세련된 동네로, 이 거리에서 갈라지는 작은 골목마다 멋진 펍과 가게들이 자리하고 있다. 헝가리인들은 빈티지 제품에 대한 애정도 상당한 만큼 골목 곳곳에서 멋진 빈티지 가게도 종종 만날 수 있다.
부다페스트의 빈티지숍 중 10위 안에 드는 레트록(Retrock) 숍도 이 거리에 있다. 레트록은 처음에 블라인드 시크(Blind Chic), FRKS 란제리(Lingerie), 도라 아보디(Dora Abodi) 같은 부다페스트 톱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판매하며 유명해졌다. 지금은 젊은 현지 디자이너들의 패션은 물론 오래된 구제품과 빈티지 액세서리를 수집한다. 골목마다 발견하는 가게들의 쇼윈도 장식이나 물건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 오래됐지만 촌스럽지 않은 빈티지 제품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느껴진다. 부다페스트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새로운 패션과 빈티지를 조화시키는지, 그것들을 얼마나 자연스럽고 감각 있게 입고 다니는지 말이다.
폐허에서 밤 문화의 상징으로
키라리 거리는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오기 좋은 곳이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유명한 루인 펍(Ruin Pub)과 여러 나라의 음식점 및 바들이 모인 고즈두 우드바(Gozsdu udvar) 정원이 모두 이 거리에 있다. 부다페스트에만 있는 루인 펍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로 방치되던 빈 건물들을 개조해 펍이나 클럽으로 만든 곳을 말한다. 유독 빈 건물이 많았던 유대인 지구에 10여년 전부터 생겨나기 시작해 지금은 부다페스트의 밤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루인 펍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심플러(Szimpla)다. 크고 작은 인형과 구식 피아노 건반, 오래된 그림과 텔레비전, 자전거, 찢어진 우산까지 온갖 잡동사니 물건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통속적인 분위기와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한 의자와 장식들은 새빨간 조명과 함께 밤에는 기이한 풍경마저 만들어낸다. 주말 밤이면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녀야 할 만큼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다. 2층으로 된 건물은 문을 다 떼어낸 방들이 1, 2층으로 다닥다닥 붙어있고, 사람들은 맥주 한 병을 사들고 그 방들을 기웃거리며 구경하며 다닌다. 일렉트로닉 음악의 디제이가 밤새 음악을 틀고, 이제는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해진 밤의 아지트다.
심플러에서 멀지 않은 또 다른 루인 펍, 포가스하즈(Fogas Haz)가 있다. 건물 중앙에 천장이 뚫린 야외 정원이 있고, 나무가 우거져 훨씬 자연의 내음이 느껴진다. 봄과 여름이면 오후부터 맥주를 마시는 현지인과 루인 펍 문화를 사랑하는 현지인들이 심플러와 이곳을 오가며 밤을 보낸다.
오래된 건물의 입구로 들어가면 큰 안뜰이 나오는 고즈두 우드바에는 여러 나라의 음식과 술을 파는 음식점이 모여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최근에 문을 연 스필러(Spiler)는 부다페스트의 다양한 길거리 음식과 와인을 파는 비스트로 펍인데 분위기가 매우 감각적이다. 데이트를 하는 연인이나 친구들이 즐겨 찾는 이곳에서는 잘생긴 바텐더의 친절한 서비스가 더욱 밤을 흥겹게 한다.
부다페스트의 유명한 세체니 온천과 영웅광장이 있는 지역으로 관광을 갔다면,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유명한 군델(Gundel) 레스토랑도 빼놓지 말자.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실제 촬영 장소이기도 했던 고급 레스토랑으로, 헝가리식 팬케이크인 초콜릿 팔라친타가 유명하다. 여행의 피로함을 달달한 팬케이크로 녹이는 것도 진미다.
부다페스트의 주요 펍과 레스토랑
-스필러(spilerbp.hu)
부다페스트의 세련된 밤을 느끼고 싶다면 안뜰 안에 숨어있는 스필러를 찾아갈 것.
-심플러 클럽(Szimpla.hu)
부다페스트의 대표적인 루인 펍. 기이한 장식과 분위기에 밤이 더욱 흥겨운 곳이다. 골목이 밝지 않아 늦은 밤에는 좀 조심하는 것이 좋다.
-군델 레스토랑(gundel.hu/en/)
1910년에 문을 연 곳으로, 내부는 고풍스럽고 격식이 느껴진다. 안뜰 정원이 매우 아름다워 여름에는 특히 인기가 많다.
부다페스트=글·사진 이동미 여행작가 ssummersu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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