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브랜드 출범·구본무 회장 취임 20년
취임 3년째였던 1998년 빅딜로 LG반도체 떼낸 뒤
디스플레이 육성 절치부심…2차전지도 반석위에 올려놔
GS·LS계열분리에도 그룹 매출 5배 키워
국내 첫 지주사 체제 전환…시장선도로 도약 나서
[ 주용석 기자 ] LG그룹이 1995년 1월 그룹 명칭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꿀 때만 해도 안팎의 반대가 심했다. ‘널리 알려진 이름을 뭣 하러 바꾸느냐’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구본무 부회장은 LG가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CI(기업 이미지) 변경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구 부회장은 그해 2월22일 그룹 회장에 취임했고, 올해로 취임 20주년을 맞았다. 그 사이 LG그룹은 GS와 LS, LIG그룹을 계열 분리하고도 전자·화학·통신서비스 사업을 기반으로 지속 성장해왔다. 1994년 약 30조원이던 매출은 계열 분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150조원으로 5배 커졌고,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100조원으로 10배 늘어났다.
○뚝심이 만든 ‘디스플레이 세계 1위’
구 회장은 회장 취임 3년여 만에 외환위기의 시련을 맞았다. 1998년 말 정부 주도 빅딜로 LG반도체를 떼줘야 했다. 이때 구 회장이 던진 승부수가 LCD(액정표시장치)다. LG전자와 LG반도체로 흩어져 있던 LCD 사업을 하나로 뭉쳐 전문기업을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당시만 해도 대규모 장치산업인 디스플레이 사업 육성은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LG는 14개월간의 협상 끝에 1999년 네덜란드 필립스로부터 민간 투자로는 사상 최대인 16억달러의 외자 유치를 성사시켰다. 이를 토대로 합작기업인 LG필립스LCD가 탄생했다. LG의 응용기술과 필립스의 기초기술이 결합해 LG는 신규 투자에 따른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며 LCD 사업 선두주자로 올라섰다. 2008년 필립스와 결별한 뒤에도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다. 1995년 당시 임직원 1100명, 매출 15억원 수준에 불과했던 LG의 LCD 사업은 현재 임직원 3만2500명, 매출 20조원대로 성장했다.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도 구 회장이 뚝심으로 이뤄낸 사업이다. 1992년 당시 부회장이던 구 회장은 영국 출장 중 한 번 쓰고 버리는 건전지가 아니라 충전하면서 반복 사용할 수 있는 2차전지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당시 럭키금속에 2차전지 연구 특명이 떨어졌고 이후 LG화학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수년간의 투자에도 성과가 없자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지만 구 회장은 “포기하지 말고 길게 보고 집중하자”고 힘을 실어줬다. 그 결과 LG화학은 현재 중대형 2차전지 분야에서 세계 1위로 평가받고 있다.
구 회장은 통신 시장에서도 후발주자 LG를 ‘무시 못할 강자’로 바꿔놨다. LG유플러스가 처음 최첨단 롱텀에볼루션(LTE) 망을 깔 때, 당초 계획은 3년간 전국망을 구축한다는 것이었다. 구 회장은 그러나 시장 판도를 바꾸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통해 9개월 만에 전국망을 구축하도록 했다. 덕분에 LG유플러스의 시장 점유율이 17%에서 20%대로 뛰어올랐다.
○지배구조 ‘깔끔’, 차세대 산업 육성
구 회장은 기업 지배구조도 일찌감치 깔끔하게 정리했다. LG는 2003년 3월 국내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순환출자 고리를 정리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최근 순환출자 구조를 정리하는 다른 기업과 비교하면 10년 이상 빠른 것이다. 지배구조 단순화·투명화는 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생소했던 일로, 외환위기 당시 “그룹 경영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구 회장의 신념이 반영된 결과라고 그룹 측은 설명했다.
지주회사 체제 구축과 GS 등의 계열 분리가 마무리된 직후인 2005년 구 회장은 ‘LG 웨이(way)’를 선포하며 새로운 도약에 나섰다. LG의 핵심 경영 이념으로 ‘고객을 위한 가치 창조’ ‘인간 존중 경영’ ‘정도 경영’을 통해 ‘일등 LG’ 목표를 달성하자는 비전을 제시했다. 최근에 시장 선도를 핵심 화두로 내걸었다.
취임 20주년을 맞은 구 회장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한때 경쟁에서 밀려나며 큰 어려움을 겪은 LG 스마트폰의 확실한 부활과 예상보다 시장이 늦게 열리고 있는 2차전지 사업의 안정화 등은 당장 풀어야 할 숙제다.
분명한 미래 먹거리 발굴도 과제다. 스마트카 등 친환경 자동차 부품사업과 에너지 솔루션을 비롯한 차세대 성장 사업이 보다 빨리 성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LG는 지난해 첫삽을 뜬 서울 마곡의 LG사이언스파크에서 대규모 융·복합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LG사이언스파크는 2020년까지 4조원을 투자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구 회장이 올해 만 70세를 맞은 만큼 그룹 경영의 안정화를 위해 후계 구도에 대한 그림 그리기도 마냥 늦추기는 어렵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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