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원기 기자 ] ‘김영란법’이 접대비 실명제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접대비 실명제는 기업이 건당 50만원 이상의 접대비를 지출할 경우 접대 목적과 접대자 이름, 접대 상대방의 상호와 사업자 등록번호 등을 기재토록 한 것이 핵심이다. 2004년 초 도입됐으나 부작용만 키운다는 비판에 따라 2009년 폐지됐다.
접대비 실명제 도입 당시 국세청은 건전한 소비문화 정착과 투명한 세원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접대비 실명제가 도입되자 나타난 1차적 영향은 기업들의 접대비 감축이었다. 2003년 5조4372억원이던 기업들의 접대비는 실명제 도입 후인 2004년에는 5조1626억원으로 5%가량 감소했다. 이 피해는 고스란히 음식점 등 자영업자들이 떠안았다. 주점 등에서의 사용 금액은 같은 기간 1조6144억원에서 1조3270억원으로 18%나 줄었다.
이후 접대비는 조금씩 증가세로 돌아서긴 했지만, 편법 결제가 판을 치기 시작했다. 한 번에 50만원 넘게 비용이 나올 경우 카드 외 따로 마련한 현금을 사용하거나 50만원 미만으로 쪼개서 지급하는 결제 방식이 대폭 늘었다. 추적이 쉬운 카드 결제에서 50만원을 넘기지 않기 위해 현금 결제를 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지하경제를 양산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 도입한 접대비 실명제에 대해 결국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물론 여당인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2004년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김종률 열린우리당 의원은 “매출액 대비 손비인정 한도라는 접대비 전체에 대한 규제가 있는데 여기에 다시 건당 한도를 두는 것은 이중규제”라고 지적했다. 접대비 실명제는 실제 정책적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소비 침체와 탈법을 부추긴다는 비판 속에 2009년 폐지됐다.
세종=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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