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이라크 증산에 사우디 "亞 판매분 할인"
일부 원유 트레이더 "20弗까지 하락"에 베팅도
[ 뉴욕=이심기 기자 ]
유가가 급락하는 ‘역(逆) 오일쇼크’가 2015년 벽두부터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국제유가가 5일(현지시간) 장중 배럴당 50달러 아래로 떨어진 데다 유럽의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조짐 확산,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가 맞물리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러시아, 이라크 증산대열에 가세
국제유가가 계속 미끄러지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공급과잉 때문이다. 최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러시아와 이라크도 물량공세를 통한 에너지패권 다툼에 가세했다는 점이다. 6일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에너지부는 지난달 원유 생산량이 하루 1067만배럴로 옛 소련 붕괴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달 원유가격 하락에도 감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방침을 발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통화위기로 자국 통화인 루블화 가치가 폭락한 러시아가 달러 유동성 확보를 위해 증산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2위 산유국인 이라크도 원유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이라크 석유부는 지난해 12월 원유 수출량이 하루 294만배럴로 1980년대 이후 약 3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또 이달부터 수출량을 하루 330만배럴로 늘린다고 했다.
여기에 유가가 배럴당 20달러로 떨어져도 감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물량공세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날 사우디는 아시아에 대한 2월 판매분부터 14년 만에 가장 높은 할인 폭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로이터는 이런 조치가 지난달 리비아 내부의 무력충돌과 OPEC 내 최대 원유수출항이었던 에스시데르항 폐쇄로 리비아의 하루 산유량이 38만배럴로 줄어든 공급감소 효과를 상쇄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급은 넘쳐나는 반면 수요는 여전히 부진하다. ‘그렉시트’ 위험이 증폭되면서 경기침체 국면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의 원유 수요는 줄어들 것이 확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전통적인 에너지 다소비국인 중국의 경기둔화도 유가에 악재가 되고 있다.
○對이란 제재 해제 가능성도 부담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유가가 배럴당 50달러 밑으로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예상이었지만 상황이 달라지면서 40달러 선으로 추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경제전문매체 마켓워치는 “일부 원유 트레이더들이 유가가 배럴당 20달러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보고 행사가격 20달러짜리 풋옵션까지 매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풋옵션은 미래의 특정한 날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자산을 팔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원유 풋옵션을 매수한 경우 가격이 하락하면 그만큼 차익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유가가 추가 하락할 것으로 보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유가 전망치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씨티그룹은 올해 말 브렌트유 전망치를 종전 배럴당 80달러에서 63달러로 낮췄고 2분기에는 55달러까지 추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해제 가능성도 가격에 부담을 주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애덤 롱슨 모건스탠리 분석가의 말을 인용, “미국의 이란 제재 해제 시 이란의 원유 수출이 몇 개월 내 하루 50만배럴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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