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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진맥과 초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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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어의가 왕비의 손목에 묶인 명주실을 멀리서 잡고 한참 진맥을 한 뒤 “마마, 감축 드리옵니다”라며 기뻐한다. 사극에 자주 나오는 ‘명주실 진맥’ 장면이다. 그러나 이는 드라마일 뿐이다. 실제로는 방안에 쳐 놓은 발 바깥으로 왕비가 손을 내밀면 그 위에 천을 덮고 맥을 짚었다.

더 솔깃한 장면도 나온다. 사흘 만에 낫는다던 구안와사(입과 눈이 돌아가는 병)가 왜 아직 이러냐고 불평하는 환자에게 “맥을 짚어보니 점심 때 국수를 먹었더라. 가루음식 먹지 말랬는데 왜 어겼느냐”며 호통을 친다. 이 역시 과장이다.

한방에선 4진(四診)을 활용해 환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파악한다. 안색과 피부 등을 눈으로 보는 망진(望診), 숨소리와 목소리 등을 들어보는 문진(聞診), 증상 등을 물어보는 문진(問診), 직접 만져보고 눌러보는 절진(切診)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진단법이 진맥이다. 오래 전 ‘맥경(脈經)’을 쓴 중국의 왕숙화(王叔和)는 진맥만으로 오장육부의 상태를 다 알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왕의 임종에 입회동참할 정도로 의학지식에 밝았던 다산 정약용은 그의 ‘맥론(脈論)’에서 “진맥으로 오장육부의 상태를 알아낸다는 주장은 마치 한강 물을 떠보고 어느 지류의 물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물론 이는 진맥의 의미를 깎아내리자는 게 아니라 침소봉대의 과장이나 오진을 경계하자는 말이긴 했지만 그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기도 했다.

우리 몸 속 장기의 상태를 쉽게 알 수 있게 된 것은 X레이나 초음파검사기 등 현대의료기기가 등장한 뒤였다. 19세기 말에 발견된 X레이나 20세기 중반부터 활용된 초음파검사 모두 물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한 과학의 승리라 할 수 있다. 특히 초음파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보다 주파수가 큰 음파를 인체 내부로 전파시켜 체내 연조직에서 반사된 음파에서 얻어진 반사 영상을 이용한다. 검사 방법은 간단하지만 영상을 의학적으로 판독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X레이나 초음파검사기 등을 한의사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제완화 정책을 놓고 의사 단체와 한의사 단체의 싸움이 격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너희가 뭘 알아?’라며 전면투쟁을 외치고 또 한쪽에서는 ‘직능이기주의’라며 맞서고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낯뜨거운 밥그릇 싸움으로 비친다. 하기야 정부조차 민간이 개발한 스마트폰용 헬스앱을 의료용이 아닌 오락용으로 묶는 상황이니 누굴 탓할 수만도 없게 됐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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