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살리려면 공무원 氣도 살려라
준비 없이 맞이한 '세종시 시대'
의료시설 태부족…뇌졸중 등 응급치료할 병원
빨라야 2018년 들어서…"밤에 아프면 어디로 갈지"
보육시설도 적어…청사 어린이집 수십명 대기
외부 유치원도 정원 넘쳐…주유소·대형마트 달랑 1개
[ 김주완/임원기 기자 ]
지난해 10월 경제부처의 A과장. 그는 토요일 오후 세종시 인근에서 운동하다가 이마 뼈가 함몰되는 사고를 당했다. 정부세종청사 바로 옆에 있는 충남대병원 부설 세종의원으로 달려갔지만 허사였다.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할 수 있는 의료기기는 있었지만 이 CT를 판독할 수 있는 의사가 없었던 것. A과장은 결국 승용차로 30분 거리 떨어져 있는 대전의 한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는 “다행히 뼈 골절이 뇌 손상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너무 아찔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응급시설이 없다
10년에 걸친 정부세종청사 건설과 이전이 지난달 말 마무리됐다. 36개 부처의 1만300여명, 14개 국책연구기관의 3200명이 입주를 마쳤다. 하지만 정주 여건은 턱없이 부족해 공무원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가장 큰 불만은 의료시설 부족이다. 현재 세종시의 병·의원은 모두 51개로 2013년(16개)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치과 17개, 한의원 8개, 소아과 7개, 내과 5개, 이비인후과 4개, 정형외과 3개 등이다. 하지만 중증질환 등 치료가 힘든 질환을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종합병원은 하나도 없다. 세종시에 들어설 종합병원인 세종충남대병원은 설계가 올해부터 시작되고 이르면 2018년에야 완공된다. 그때까지 세종시에는 주말과 야간에 의료 응급 상황을 제대로 해결할 곳이 없다. 총리나 장관이 쓰러지더라도 생명을 건질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 국정 운영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31일 기자가 직접 세종의원에 전화해 뇌졸중 환자가 있다고 하자 병원 측은 “뇌졸중인지 아닌지 확인해 줄 수는 있지만 응급 처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전을지대병원으로 가라”고 답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대전을지대병원까지는 길이 막히지 않더라도 승용차로 30분 넘게 걸린다. 다른 경제부처의 B과장은 “아내를 설득해 세종시에 같이 내려오려고 했지만 생후 1년을 갓 넘은 아이가 밤 늦게 갑자기 아프면 갈 곳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혼자 거처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업무-육아 병행하기 어렵다”
보육시설도 부족하다. 공무원들은 정부세종청사 내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수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청사 4동의 예그리나 어린이집의 경우(맞벌이 공무원, 자녀 만 1세 기준) 현재 대기자가 65명에 이른다. 청사 5동의 금강 어린이집의 대기자는 24명이다. 결원이 생겨야 아이를 해당 어린이집에 맡길 수 있다. 게다가 청사 어린이집에는 무기계약직 이상의 공무원만 자녀를 보낼 수 있어 비정규직 공무원들의 불만은 더 높다.
이 때문에 상당수 공무원이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외부 어린이집을 이용한다. 하지만 청사 밖 어린이집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접수를 마친 올해 세종시의 공립단설(독립적인 건물이 있는) 유치원 원아의 모집(1·2생활권 기준) 결과 만 3세 원아 모집 규모는 306명에 불과했지만 761명이나 몰렸다. 218명을 모집하는 만 4세에는 461명, 만 5세에는 346명 모집에 418명이 지원했다. 700명 이상의 아이들은 갈 곳이 없다.
공무원 75%, “삶의 질 나빠졌다”
학교 사정도 비슷하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2010년 세종시 지역의 학교를 획일적으로 ‘24학급, 학생 600명’으로 잡고 건설했지만 예상보다 학생 수가 많아 교실난이 심각하다. 세종시 한솔초교의 경우 1500여명을 수용하기 위해 교실이 아닌 특별실 등에서 수업을 하거나 일부 학생은 인근 다른 학교에서 수업을 하기도 했다. 교육시설도 부실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0월 세종교육청이 국회에 제출한 ‘세종시 학교운동장 면적 현황’에 따르면 49개의 초·중·고교 중 운동장 한 쪽 면의 길이가 100m가 안 되는 학교가 47곳(95.9%)으로 나타났다. 체육대회는 물론 체력검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얘기다. 6개 학교는 운동장 직선거리가 50m도 넘지 못했다. 이 외에도 대형마트와 주유소는 각각 1개에 불과하고 백화점, 영화관 등은 전무하다.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만족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4월 국무조정실 세종시지원단이 세종시로 이전한 부처의 공무원을 전수 조사한 결과 세종시 이주 후 삶의 질에 대한 질문에 9.9%만 ‘좋아졌다’고 답했다. 반면 ‘나빠졌다’고 답한 비율은 75.4%에 달했다.
앞으로도 세종시로 이주하지 않겠다는 공무원도 15.0%에 달했다. 이주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배우자 등의 직장 문제(31.3%), 자녀 교육 문제(31.2%) 등을 꼽았다. 세종시에 홀로 이주해 가족과 떨어져 사는 공무원도 전체의 19.0%나 됐다. 전년보다 4.5%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세종=김주완/임원기 기자 kjwan@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