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미디어팀] 2014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공감 드라마’라는 새로운 드라마 단어도 탄생했다. tvN 드라마 ‘미생’은 각 잡힌 정장차림으로 출근했다가 풀어진 넥타이를 그대로 둔 채 퇴근하는 평범한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다루며 시청자의 든든한 지지를 얻고 있는 대세 드라마로 떠올랐다.
드라마가 흥행의 흐름을 타고 난 후 미생을 통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시선이 증가했다. 구두 굽이 납작할 때까지 달리는 이유와 남편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을 마시는 이유. 그리고 성과를 보여주어도 여전히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 상처받는 계약직 사원을 드라마를 통해 다시 한 번 상기했다. 시쳇말로 넥타이 부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날 선 정장과 티끌 없는 흰색 와이셔츠를 입었지만 겉으로만 화려해 보일 뿐 각자의 시련과 고민을 안고 현실을 버티며 살아가는 하루를 나눌 수 있었다.
옆 사무실에 있을 법한 영업3팀 사원 ‘장그래’는 힘든 시작과 고비가 있었다. 좋지 않은 학벌에 자격증 하나 없는 그. ‘장그래’는 하루를 보낼 때 마다 넘어야 할 산을 만난다. ‘장그래’가 벽에 가로막힐 때마다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함께 한숨을 쉬고 함께 운다.
‘장그래’와 김재중은 다른 세상을 사는 듯이 보인다. 입사와 동시에 장그래는 동료들에게 무시 받고 상사에게 촌철살인의 충고를 들었다. 며칠밤을 새서 값지게 만들어낸 아이템도 계약직 사원이기 때문에 다른 이를 책임자로 세워야 했다. 참고 사는 것도 한계가 있다지만 현실에 순응하며 답답하리만큼 인내하는 장그래의 삶. 이에 비해 김재중은 밤낮없이 비행기를 타며 세계의 팬들을 호령하고 가수와 배우로서 열정을 펼치며 화려한 스타의 삶을 사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장그래’와 똑같이 김재중에게도 어려운 시작이 있었고 한동안 고달픈 생활이 있었다. 여전히 김재중은 높은 산에 부딪히고 풀어야 할 숙제를 가지고 있다. 멈추지 않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김재중 또한 마찬가지니까.
바둑을 통해 배워온 삶의 노하우를 가지고 뚝심 있는 인생을 살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장그래. 그리고 가요계의 정상을 맛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신인의 자세로 연기의 길을 택한 김재중. 방향은 다르지만 평범한 인생을 뒤바꾸는 어딘가 비범함을 가진 사나이들이다. 지극히 평범했던 시간들을 특별한 인생으로 엮어가는 둘이다.
특별한 김재중의 평범한 이야기. 원 인터네셔널 영업3팀 장그래는 이번 금요일에 만나고, 지금은 ‘코리아연예 인터네셔널’ ‘엔터테이너 3팀’ 사원 김재중을 만나보자.
▶ 김재중의 입사
16세에 홀로 서울로 향한 김재중. 가수가 되겠다고 무작정 집을 나온 날, 그는 이틀 밤을 샜다. 모르는 곳에서 자면 누가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말에 아무데서도 잘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기에도 너무 어렸던 김재중은 길거리에 있는 신문 배급소를 찾아갔다. 그는 무작정 이틀 밤을 샜다며 짜장면 하나 시켜달라는 말을 건넸다.
사장님이 주소와 전화번호 말하면 그렇게 해주겠다는 말에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가수하고 싶어서 서울에 혼자 왔어요”라며 당돌하게 말했다. 짜장면을 먹고 잠든 사이, 인천에 사는 큰 누나가 그를 데리러 왔고 그 때부터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서울에 올라온 지 첫 번째 달에는 오디션에 서 낙방의 고배를 마셨는데 다음 달 그는 연습생으로서 가수의 꿈을 향한 빛을 볼 수 있었다.
김재중은 힘들었던 연습생 시절을 추억하며 한 방송에서 일화를 말하기도 했다. 고시원 방값 15만원이 부족해서 ‘태극기 휘날리며’에 엑스트라로 출연해 번 돈으로 껌과 초콜릿을 사 식당을 돌아다니며 팔았다. 하지만 너무 멀쩡하게 생긴 외모 때문에 되레 의심만 받고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 때 주변에 있던 슈퍼 주인 아주머니께서 “아들 같은 놈이 왜 이러고 다니냐,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으시며 “껌과 초콜릿은 다 놓고 가라” 하시고 필요했던 방값 15만원을 주셨다고 회상했다.
아무것도 없이 홀로 올라온 김재중은 눈뜨고 코 베인다는 서울에서 살아남았다. 무서울 것 없는 젊음과 원대한 꿈을 가지고 힘든 시기를 버틴 그는 2004년 화려한 데뷔 무대를 가졌다. 얇은 장작이 타오르던 순간이었다.
김재중에게 가족은 특별하다. 외로운 연예계 생활을 따뜻하게 챙겨준 부모님과 여덟 명의 누나들. 얼마 전 부모님 고희연 사진이 그의 SNS에 올라왔다. 사정으로 인해 한 자리를 비웠지만 나머지 7명의 누나와 그의 매형들, 조카들까지 정말 다복한 대가족이었다. 매형들과 함께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모습과 어머니를 안아 함께 마주보고 있는 사진은 화려한 스타지만 영락없는 막내아들이었다.
데뷔 10년차의 김재중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아니 책임감이 더 막중해졌다. 계속되는 콘서트와 앨범 발매에 배우의 본분을 다하려니 그 무게가 작지만은 않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책임감과 팬들의 기대감에 보답하기 위해 땀 흘리며 버텨낸다.
데뷔를 바라볼 때는 조명 아래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연습했다. 큰 인기를 끌며 가수로서 이름을 날리면서 앨범준비, 콘서트 준비하는 동안에는 풍선을 든 팬들을 위해 노력했다. 옷이 흠뻑 젖을 정도로, 목이 긁히는 칼칼한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는 움직인다. 그리고 방송 출연을 위해 연기자의 길에 뛰어든 이후 대본에 집중한 김재중은 깊은 집중력을 발휘해 감정을 이끌어낸다.
▶가수 (‘엔터테이너 부서’ 진행 프로젝트1)
찬바람이 시작되는 11월의 어느 날, 도쿄가 흔들렸다. JYJ의 도쿄 돔 공연 ‘이치고 이치에’가 시작된 것. ‘이치고 이치에’. ‘평생 단 한번뿐 인 만남’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JYJ가 일본에서 정식으로 여는 첫 콘서트임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이틀간의 만남에는 10만명의 팬이 함께했다. JYJ는 2010년 도쿄 돔에서의 첫 공연 이후 현재까지 총 7회 공연으로 도쿄 돔에 입성 한 국내 아티스트 중 최다 공연 기록을 자랑한다. 일본 현지 가수도 쉽게 서지 못하는 공연장에서 5만5천명을 압도하는 공연을 펼친 JYJ. ‘입성(入城)’이라는 글자가 괜히 붙는 것이 아니다.
하얀 얼굴과 까만 눈동자,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은 무대를 넘어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인 어린 소녀를 휘어잡았고 김재중은 데뷔와 동시에 스타가 되었다. 2004년 데뷔 그리고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도 그는 멤버 김준수, 박유천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 아이돌‘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찬바람만 남아 감싸는 우리나라 가요계에서 JYJ는 이른바 ‘넘사벽’의 성적을 내며 따뜻한 봄의 싹을 틔우려 한다. 그들의 첫 정규 앨범 ‘IN HEAVEN’은 선주문 30만장을 돌파했고 2014년 발매한 두 번째 정규 앨범 ‘JUST US’는 12만장을 넘겼다. JYJ의 앨범은 발매될 때마다 얼어있던 가요계를 녹이곤 하는데, 온라인 시장뿐만 아니라 오프라인 시장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에서 그들의 위력을 볼 수 있다.
JYJ는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앨범으로서 증명하며 흔히 말하는 ‘아이돌의 한계’를 깼다. 음악으로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녹여내고 꿈꾸던 음악을 함께 하며 일거양득의 결과를 낸 것. 발매하는 앨범마다 메시지를 담은 가사와 절절하면서도 머리에 남는 멜로디는 듣는 이의 귀를 집중시킨다.
JYJ로서 성공을 이루고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 김재중이다. 아이돌 가수로서 박수를 받고 있지만 그가 품고 있었던 또 다른 꿈은 ‘록’에 대한 도전이었다. 시나위 출신의 보컬리스트 김바다와 YB의 윤도현 등 한국 록을 이끌어가는 아티스트들이 그의 앨범에 참여했다.
누구에게나 ‘첫 시도’란 두려운 존재이지만 김재중은 자신이 세운 깃대를 향해 언덕을 넘어 날았다. 여성 팬들을 이끄는 그가 록 장르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대중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중에게 비교적 가까운 장르가 아닐뿐더러 마니아 층이 두터운 장르이기 때문. 인기에 힘입어 섣불리 한 도전이 아닌가 하는 격앙된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김재중의 첫 솔로 미니앨범 ‘I’는 선 주문 12만장으로 화제를 모았고 발매와 동시에 완판됐다. 솔로 아티스트 김재중에 대한 관심이 예열이 되기 시작하더니 추가 제작분 2만장이 일주일만에 전량 판매되었다. 솔로 가수로서 아시아투어를 열며 그 인기를 입증했다. 록 마니아들의 블로그에도 김재중의 이름과 앨범이 오르내리며 그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어려웠던 시작을 지나고 가수로 데뷔한 김재중. ‘가수가 되자’는 어렸을 적 꿈을 이루고 나서도 고민하고 노력하는 삶을 사는 중이다. 가수의 길을 밟을수록 타고난 가수임을 증명하는 김재중. 데뷔 이전부터 달려왔지만 여전히 앨범을 준비하고 콘서트 준비에 쉬지 않는 그다. 팬들에게 항상 감사함을 표하고 엄청난 관객이 함께한 콘서트장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소탈하고 겸손한 가수다.
버티는 것이 ‘완생’이다 - 드라마 ‘미생’ 中
드라마 속 축 처진 어깨의 ‘장그래’도, 차에서 쪽잠을 자는 김재중도, 그리고 졸린 눈 비비며 컴퓨터 앞에 앉아 바쁘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들 모두가 버티는 중이다. 높은 자리든 낮은 자리든, 화려한 직업이든 그렇지 않은 직업이든, 몸이 힘든 일이든 머리가 힘든 일이든지 간에 모두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다. 모두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버티고 있었다. 드라마에서 꼭 짚어주지 않았어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 않았을까. 단지 자신이 ‘미생’이라는 것을 미리 밝히기 싫었을 뿐. (사진출처: bnt world, 김재중 SNS, 씨제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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