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맘·저소득층에 보육료 더 준다
하루 12시간 보육시스템, 현실에 맞게 단축
남는 예산으로 비정규직·워킹맘 우선 지원
전업주부 逆차별 논란…대상자 선별도 난제
[ 고은이 기자 ] 9개월째 육아 휴직 중인 이모씨. 복직을 앞두고 아이를 맡길 어린이집을 찾고 있지만 마땅한 곳을 찾을 수 없다. 전업주부 친구의 아이는 바로 어린이집에 들어갔는데 ‘워킹맘’인 이씨는 3개월째 대기순서만 기다리고 있다. 이씨는 “정부가 여성 고용 확대를 위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주창하고 있지만 현실은 딴판”이라며 “맞벌이 부부 자녀를 노골적으로 꺼리는 곳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근로 형태별로 지원 차등화
정부가 취업 여부와 소득 정도에 따라 현행 무상보육 체계를 손질하겠다는 것은 모든 국민에게 무차별적으로 예산을 퍼붓고 있는 보편적 무상복지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현행 시스템 아래에서 부모들은 시설 이용시간에 관계없이 같은 액수의 보육료를 지원받는다. 4시간을 맡기든, 12시간을 맡기든 같다. 대다수 어린이집이 이용 시간이 적은 전업주부 자녀를 선호하는 반면 시설보육이 절실한 취업모 자녀를 외면하는 이유다.
정부가 이번에 도입하려는 부분적 선별복지 시스템은 복지 현장의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는 데서 출발한다. 우선 실제 시설 보육시간(하루 6~8시간)보다 현저히 많은 보육료 지원기준(12시간)을 단축한 뒤 여기에서 절감한 예산으로 취업모와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가구를 추가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취업모 중에서도 대상을 정규직-비정규직-시간제일자리 등으로 세분화해 차등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전업주부가 지금보다 더 낮은 금액을 받을지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의 용역 결과가 나온 뒤 논의과정을 거쳐야 알 수 있지만 전업주부 몫이 삭감될 수도 있다. 이 경우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야기될 전망이다. 취업모 가구는 맞벌이 가구일 확률이 높은데, 상대적으로 소득이 더 낮은 외벌이 가구에 대한 복지예산을 깎을 경우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워낙 예민한 문제여서 섣불리 결정하기 어렵다”며 “차등화라는 대원칙 아래 복지 수혜자들이 만족할 만한 해법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진국들도 차등보육 도입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현행 보육시스템은 손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회와 정부가 2011년부터 전면 무상보육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 일부 학부모가 가정 양육을 할 수 있는 영유아까지 시설에 맡기는 바람에 어린이집 공급이 달리고 재정 부담도 늘어났다는 지적이 많다.
게다가 한국처럼 무차별적으로 보육료를 지급하는 국가도 거의 없다. 스웨덴은 부모가 취업 상태이면 주당 40시간, 그렇지 않으면 15시간만 무상보육 혜택을 제공한다. 호주도 취업 여부에 따라 지원받을 수 있는 시간이 주당 24~50시간으로 다르게 제공된다. 보편성을 지향하면서도 △맞벌이 부부 △한부모 가구 △저소득층 등 자녀 양육에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을 갖고 있는 계층에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다.
문제는 취업모 지원 대상을 세분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정규직이나 시간제일자리 외에도 아르바이트, 부업 등 다양한 근로 형태가 있기 때문이다. 전업주부라도 질병, 출산 등 사유가 있으면 종일제 지원을 받아야 하지만 이 모든 상황을 규정에 담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정부는 내년 초 연구용역이 완료되는 대로 차등 지원 대상과 범위, 방식 등을 결정하고 관계부처 협의와 공청회 등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 개편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세종=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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