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
'한전의 腦' 서버 이동에 가장 많은 비용·인력 투입
세차례 모의 훈련 거쳐…무진동 차량으로 운반
[ 심성미 기자 ]
“정말 조심해서 날라주세요. 온도는 25도로 맞춰주시고요. 절대 시속 80㎞ 이상으로 달리면 안 됩니다.”
21일 밤 12시께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5t짜리 트럭이 줄지어 앞마당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자 장동원 한전 IT운영팀장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이날은 한전의 송변전 제어 시스템, 한전 포털 시스템 등 각종 정보통신기술(ICT)용 설비를 전남 나주혁신도시로 운반하는 날이었다.
한전은 오는 12월 ‘삼성동 시대’를 마감하고 나주 신사옥에 둥지를 튼다. 본사 인력 1531명이 모두 옮겨 가는, 지방으로 이전하는 공공기관 중 최대 규모 이사다. 지난 7일부터 시작한 작업은 오는 30일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전 비용만 약 94억원이 든다.
한전의 ‘이사 대작전’에 가장 많은 인력과 비용이 투입된 부분은 ‘서버 이동’이다. 전국 각지에 깔려 있는 송변전 시스템과 신호를 교류하는 송변전설비 관제 시스템, 한전 내부 포털시스템 등 각종 서버 1228대는 전국의 전력 송전 시스템을 관리하는 한전의 ‘뇌’라고 할 수 있다. 조그만 충격에도 고장이 날 수 있는 예민한 장비다.
한전은 네 차례에 걸쳐 ICT 장비를 옮긴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날은 마지막 장비 이전일이었다. 금~일요일에 걸쳐 장비를 나를 때마다 팀원 100여명은 꼬박 사흘 밤을 지새웠다.
이날도 오후 6시부터 서버 453대의 전원을 내리고 분리하는 작업을 했다. 본격적인 이동 작업을 시작하기 전 운송팀은 이미 세 차례 모의 훈련을 했다. 이효근 IT서비스팀 차장은 “서버의 전원을 내리는 데만 4~5시간이 걸리고 분리하는 데 5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설명했다. 서버에 연결된 수만 개의 케이블선은 순서대로 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서버에 무리를 줘 고장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장 팀장은 “케이블선을 빼고 꼽는 순서를 정하는 데만 3개월이 넘게 걸렸다”고 설명했다. 높이 때문에 통제실 문을 통과할 수 없는 큰 서버는 로봇을 이용해 트럭으로 운반했다. 분해한 서버는 ‘충격 흡수장치’를 장착해 흔들림을 최소화한 무진동 차량에 실어 다음날 새벽 6시에 나주로 출발한다. 이 차의 대당 가격은 1억원이 넘는다.
운송 경로를 정하는 데도 고심했다. 최대한 차가 다니지 않는 곳으로 새벽 시간에 운반했다. 나주로 이동할 때까지 경찰차가 앞에서 호위하며 도로 공간을 확보해줬다. 나주에 도착하면 일요일 밤까지 조립을 마쳐야 한다. 미리 정해둔 순서대로 수천 개의 선을 꽂고 전원을 올리는 일이다.
장 팀장은 “운송 작업을 하기 전 모의 훈련을 세 번씩 했지만 혹여라도 서버가 고장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9일엔 나주에 내려가 서버 373대의 조립을 마쳤는데도 전원이 켜지지 않아 진땀을 뺐다. 결국 800여개의 회선을 다시 빼고 꽂아 서버를 정상화한 뒤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한전이 나주로 가져가는 건 ICT 장비뿐만이 아니다. 20년 된 책걸상까지 모든 비품을 그대로 가져다 쓰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이날 오후 한전 앞마당엔 낡은 나무책상과 의자, 숙직실에서 쓰는 베개와 이불, ‘골드스타’ 마크가 적힌 선풍기가 5t짜리 트럭에 한가득 쌓여 있었다.
비품 운반을 맡은 물류기업 한진의 서효석 대리는 “지하창고에 잠자고 있는 테이블까지 모두 수거해 옮기는 바람에 쓰레기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전은 쓰레기 처리 비용으로 달랑 200만원을 책정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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