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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관용, 그리고 게임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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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사회
실수 눈감는 미덕 그리워져

이재후 < 김앤장 대표변호사 jhlee@kimchang.com >



“빨리 좀 주세요.”

“어이쿠, 내가 그 소리 듣기 싫어 이역만리 떨어진 이곳에다 식당을 차렸는데 한국 손님 받으니 그 소리를 여기서도 듣네.”

이민사회 식당에서는 제법 유명하다는 우스갯소리다. ‘빨리빨리’로 수렴되는 생동감, 앞으로 전진하는 에너지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이끈 힘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눈부신 발전과 별개로 심각한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사회. 누구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여론의 단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이 온 것이다.

사건이 터지면 수많은 매체와 개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여론은 급물살을 탄다. 개인적인 사건일수록 이목이 집중되고 선정성은 높아진다. 예전 같으면 자연스럽게 걸러지고 덮일 수 있었던 루머 수준의 사건까지 무분별하게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갱생 불가능한 타격을 받기도 한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사회, 아차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세상이다.

사법 영역도 다르지 않다. 소장이 접수되기도 전에 여론이 들끓고 수많은 ‘전문가’가 손을 보탠다. 소송 여부가 주변의 훈수에 따라 개시되기도 한다. 사건에도 양극화가 심해져 어느 사건에는 변호사는 물론 필요 이상의 전문가와 언론이 포화와 같은 관심을 쏟는 데 비해 진정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건은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형식적인 절차에 따라 조용히 마무리된다.

선진국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에 관한 수많은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 기준의 하나로 누구나 차별 없이 최소한도의 법률적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 있느냐 여부를 꼽는 데는 이견이 없으리라 본다. 당사자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최후의 법적 장치가 변호사의 조력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변호사의 변론권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첩경이 아닐 수 없다. 형사 절차뿐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원 등 행정 절차에 있어서도 변호사의 변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통칙규정이 필요하다.

배고픔의 시절이 잊혀져가는 2014년 오늘, ‘밤새 안녕하셨습니까’라는 인사가 생소하지 않다. 유리성처럼 모든 것이 훤히 드러나는 세상에서 가끔은 타인의 실수를 눈감아줄 수 있는 따뜻한 관용의 미덕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관용을 넘어 사법의 테두리로 들어온 사건에 관해서는 누구나 필요한 최소한의 무기를 갖고 대등하게 다툴 수 있는 ‘게임의 룰’이 보장되는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이재후 < 김앤장 대표변호사 jhlee@kimch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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