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아픔 간직한 부다…도나우강 건너편 페스트엔 젊음의 열정이 가득
언덕 위 '왕비의 도시' 베스프렘
헝가리 속의 바다, 벌러톤 호수
명품 도자기 굽는 마을, 헤렌드
[ 서화동 기자 ]
‘다뉴브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의 첫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느닷없이 날아온 수발의 쏘련제 탄환은/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학창시절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김춘수 시인(1922~2004)의 ‘부다페스트에서 소녀의 죽음’이라는 시다. 헝가리의 역사는 길지 않다. 4세기 말까지 로마제국의 속주였던 판노니아 평원에 마자르인들이 들어와 헝가리 왕국을 세운 것은 서기 1000년. 한때 중부 유럽의 강국으로 군림했으나 13세기 몽골제국, 16세기 오스만제국의 침략으로 국토가 유린됐다. 특히 오스만 침략 이후 오스만제국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가 헝가리 땅을 분할 지배했고, 오스만이 물러간 뒤에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했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 오스트리아에서 분리돼 최초의 공화제 국가를 세웠으나 국토와 인구의 절반 이상을 잃었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나치 독일의 압박과 잃은 땅을 되찾기 위한 목적으로 추축국에 가담했으나 패전 후 소련이 헝가리를 점령해 공산화됐다. 1956년 헝가리 국민이 공산 독재에 맞서 싸웠던 ‘헝가리 혁명’을 읊은 것이 김춘수 시인의 시다. 그 헝가리로 향했다.
‘도나우강의 진주’ 부다페스트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것은 오후 6시께. 해가 뉘엿뉘엿할 즈음이다. 가이드는 도나우 강변의 가파른 언덕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왕궁을 비롯해 고색창연한 건축물들이 있는 부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것인데, 막 닫히려는 철문을 비집고 부다 지구에 입성했다. 잘 알려진 대로 부다페스트는 도나우강을 중심으로 강 서쪽의 구시가이자 역사 지구인 부다 지구와, 호텔·쇼핑센터·은행 등이 밀집한 상업지구인 서쪽의 페스트 지구로 구분된다.
가파른 계단과 최근에 가설했다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국왕들이 살았던 성채 안으로 들어서자 반대편으로 도나우강과 페스트 지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해발 167m의 언덕 위에 있는 왕궁은 부다페스트 관광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왕궁은 13세기 후반 벨러 4세 때 방어를 위해 건설한 네오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성이다. 13세기 말 몽골 침입 때 파괴된 것을 재건축했으나 16세기 오스만제국의 침입 때 또 대부분 파괴돼 19세기 말부터 복원했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것을 1950년대에 복구했다. 포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왕궁의 벽, 아래에서부터 위로 13세기, 15세기, 18세기 건축 흔적을 보여주는 성벽이 참담했던 부다 성의 역사를 생생히 증언한다.
왕궁은 현재 국립미술관, 현대미술관, 국립도서관, 역사박물관, 공연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왕궁 앞에 시끌벅적 펼쳐진 장터다. 왕궁 앞의 광장처럼 넓은 통로 양쪽에 기념품과 음식 등을 파는 상점이 늘어서 있어 사람들로 북적댄다. 장터에서 언덕 위로 더 올라가 대통령의 집무실로 쓰이는 19세기 건물과 1800년 베토벤이 연주했다는 18세기 건물 등을 지나자 13세기에 지어져 역대 국왕의 결혼식과 대관식 장소로 사용됐던 마차시 성당이 나온다. 15세기 후반 마차시 1세가 대대적으로 개축하며 높이 80m의 첨탑을 세웠다는 이 성당은 여러 차례의 증개축을 통해 르네상스, 고딕, 로마네스크 양식이 혼재된 절충주의 건축의 대표적 사례다.
명품 야경과 페스트 지구의 활기
마차시 성당을 지나 도나우 강변 쪽으로 가면 동화 속의 성처럼 뾰쪽한 고깔 모양의 탑을 7개 세운 네오로마네스크 양식의 성이 있다. 지금은 ‘어부의 식당’으로 불리며 부다페스트의 최고급 레스토랑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지만 원래 이름은 ‘어부의 성채’다. 일곱 개의 탑은 1000여년 전 나라를 세운 7개의 마자르 족을 상징한다. ‘어부의 성채’란 이름을 얻게 된 사연에 대해서는 지역 방어를 위해 18세기에 어부들이 성을 축조했기 때문이라는 설과 옛날에 어시장이 있던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7개의 탑은 1000여년 전 나라를 세운 7개의 마자르 족을 상징한다. 이곳에서는 도나우강변의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마침 뉘였하던 해가 다 넘어가고 어두워져 마차시성당에도, 도나강의 다리에도, 강 건너편 국회의사당에도 불이 켜져 ‘명품 야경’을 연출한다.
부다 지구와 페스트 지구를 연결하는 통로는 세체니 다리다. 도나우강에 가장 먼저 세워진 다리로, 세체니 이슈트반 백작의 아이디어로 스코틀랜드인 클라크 아담이 건설했다고 한다. 1945년에 독일군에 의해 다리가 폭파돼 다리 건설 100주년이던 1949년 다시 개통됐다.
세체니 다리를 건너 페스트 지구로 들어서자 분위기는 완전 딴판이다. 화려한 호텔과 쇼핑센터, 카페와 상점들, 시장, 북적이는 인파와 활기찬 젊은이들…. 세체니 다리 끝의 소피텔 뒷골목에서 시작되는 바치 거리는 부다페스트의 ‘명동’이라 할 번화가다. 노천카페에는 수많은 관광객과 헝가리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고, 거리에는 사람이 하도 많아 시내 구경을 하는 건지 사람 구경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세체니 다리 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중앙시장은 헝가리인들의 일상을 짐작하게 하는 장소다. 시장은 옛날 궁궐처럼 생긴 2층 건물이다. 1층에선 각종 채소와 과일, 육류, 단고추(파프리카) 가루와 거위 간 등을 팔고, 2층에는 옷과 기념품, 여러 가지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밀집해 있다.
주한헝가리대사관에 따르면 지난해 헝가리를 방문한 한국인은 6만6000여명. 이들의 헝가리 숙박일수는 총 9만박 정도여서 1인당 평균 1.36박에 불과하다. 한국인 뿐만 아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부다페스트 찍고’ 체코나 오스트리아 등지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헝가리 사람들은 그래서 “지방에도 좋은 곳이 많다”며 안타까워한다. 한국에 오는 외국관광객들이 서울과 제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과 비슷한 현실이다. 그래서 가봤다. 헝가리의 지방 소도시와 그 주변 여행지로….
경주 연상케 하는 古都 베스프렘
먼저 부다페스트에서 서남쪽으로 150㎞쯤 떨어진 베스프렘으로 향했다. 드넓은 헝가리평원에 옥수수며 해바라기를 심은 밭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두 시간쯤 달렸을까. 보코니 산맥의 기슭에 자리잡은 베스프렘에 당도했다. 인구 6만4000여명의 베스프렘은 베스프렘 주의 주도다. 일찍부터 로마인들이 살았고 헝가리인들이 들어온 9세기부터 종교도시로 발달했다. 서기 1000년 헝가리 왕국을 세운 이슈트반 1세와 기젤라 왕비가 이곳을 특히 좋아해서 베스프렘에 성을 쌓고 그 안에 대주교를 머물게 했다. 성미카엘 대성당과 수녀원도 세웠다. 기젤라 왕비를 비롯해 헝가리 왕국의 왕비 100명 이상이 대주교가 있는 베스프렘에서 대관식을 거행해 베스프렘은 ‘왕비의 도시’로 불린다.
베스프렘은 7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라고 하는데 도시의 중심은 베스프렘 성이 있는 언덕이다. 기젤라 왕비의 이름을 딴 성 아래의 기젤라호텔에 여장을 푼 뒤 돌 계단을 따라 성을 향해 올랐다. 채 5분도 되지 않아 성에 도착했다.
성 내부는 중세 시대 모습 그대로다. 하얀색 화재감시탑 앞 광장에서 납작한 돌을 보도블록으로 깔아놓은 길을 따라 영웅문을 지나면 이슈트반 1세 부부가 살았던 왕궁과 1001년 헝가리 최초로 지은 성 미카엘대성당과 그 앞의 삼위일체탑,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대주교궁 페스트 퇴치 기념탑, 학교, 교회 등이 성 안에 있다.
대로에서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가니 유명한 신발 장인인 라슬로 바시가 운영하는 현대미술관과 갤러리 등도 있다.
성 안의 언덕 끝에는 1938년 초대 국왕의 사후 900년을 기념해 세운 이슈트반왕과 기젤라 왕비의 입상이 우뚝 서 있는데, 여기서 내려다 보는 전망이 압권이다. 성 바로 아래 기다란 직벽의 베네딕도 언덕에 서있는 십자가는 13세기에 세운 수도원 교회가 15세기 오스만제국에 의해 파괴된 모습 그대로다. 이 언덕 너머로 주홍색 지붕을 인 집과 숲들이 그림처럼 눈에 들어온다. 성 아래에는 정감 어린 냇물을 따라 형성된 공원과 허물어진 옛 감옥, 고즈넉한 풍경이 우리의 경주 어디쯤을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명품 도자기·온천·수도원…매력적 소도시들
베스프렘에서 북쪽으로 30분쯤 달려가면 만나는 지르츠는 인구 7000명의 진짜 소도시다. 하지만 12세기 가톨릭의 개혁수도회인 시토회가 헝가리에 처음 진출해 수도원과 성당을 세운 곳으로 유명하다. 옛 성당은 16세기 튀르크족의 침략으로 파괴됐다가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됐다. 성당 뒤편으로는 트레킹 코스와 아름다운 숲, 연못까지 있는 공원이 멋지다.
지르츠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독일의 마이센, 덴마크의 로열 코펜하겐과 더불어 세계 3대 명품 도자기로 꼽히는 ‘헤렌드 도자기’의 생산지인 헤렌드 마을이 있다. 헤렌드는 마을 이름이자 브랜드 이름이다. 마을에는 공장과 박물관, 전시관, 상점들이 모여 있어 헤렌드의 역사와 도자기 제조 과정 견학, 상품 구입이 원스톱으로 해결된다. 1826년 설립된 헤렌드 도자기가 세계적 명품으로 자리잡은 건 모든 것을 손으로 만드는 데다 디자인이 섬세하고 뛰어나기 때문이다.
베스프렘의 서쪽에는 쉬메그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높이 270m의 언덕 위에 13세기 왕 벨러 4세가 쌓은 성이 그림처럼 고고하게 서 있는데 성 바로 아래에 현대적인 디자인의 호텔이 들어섰다. 1989년 사회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직후 개인이 성을 포함한 주변 땅을 사들여 호텔을 짓고 마상무예쇼를 하는 공연장과 중세 스타일의 동굴식당을 열었다. 중세 군인 복장으로 말을 탄 채 활을 쏘거나 창, 칼을 쓰는 쇼가 볼만하다. 공연 후에는 어두컴컴한 동굴식당에서 포크와 나이프 없이 손으로 빵과 수프, 거위다리구이 등을 집어 먹어야 한다. 별스런 중세 식사법이다.
‘헝가리의 바다’ 벌러톤 호수의 장관
베스프렘에서 남쪽으로 15㎞쯤 가면 벌러톤 호수가 있다. 넓이가 600㎡에 이르는 이 호수는 중부 유럽 최대 규모로, ‘헝가리의 텐게르(바다)’라고 불린다. 호수 둘레가 210㎞, 동서로 77㎞, 남북으로 14㎞의 길쭉한 모양이다. 수심이 낮고 수온이 높아 수영은 물론 요트나 윈드서핑과 같은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여름에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겨울에는 천연 스케이트장으로도 인기다.
이 호수 북쪽에 길이 5㎞의 작은 반도가 하나 있다. 인구 1200명의 작고 아름다운 마을 티허니가 있는 곳이다. 티허니 반도의 언덕 위에는 1055년 4대 국왕 안도라슈 1세가 세운 베네딕도 수도원의 교회가 서 있다. 성당 뒤쪽은 벌러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최상의 전망대여서 관광들로 붐빈다. 성당과 그 아래 마을은 전체가 역사보호지구다. 어부들이 많이 살았던 성당 아래 마을에는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 등이 성업 중이다.
호수를 내려다보며 헝가리인들의 휴일 별식이라는 후시레베스 수프에 수제 꿩고기국수, 고기구이로 점심을 먹노라니 여유롭기로 말하자면 여기가 바로 천국 아닐까 싶다.
여행팁
인천에서 부다페스트로 가는 직항은 없다. 카타르 항공은 인천공항에서 도하를 거쳐 부다페스트로 가는 항공편을 매일 운항한다. 인천~도하 10시간, 도하~부다페스트 5시간30분, 도하 하마드공항 대기 2시간 등 약 18시간이 걸린다. 부다페스트 중앙역에서 베스프렘까지는 열차로 1시간30분, 하루 4회 왕복하는 버스로는 2시간20분 정도 걸린다.
헝가리는 한국보다 7시간 늦다. 헝가리의 가을 날씨는 한국과 비슷하다. 통화는 헝가리 포린트(HUF)를 사용하며 1HUF는 약 4.40원. 외환은행 본점이나 인천공항 외환은행 지점에서 포린트로 환전할 수 있다. 헝가리 대도시 호텔이나 큰 상점에선 달러, 유로도 통용된다.
헝가리에서 음식 때문에 고생할 일은 별로 없다. 한국인 입맛에 맞는 음식들이 꽤 많아서다.
기본적으로 단고춧가루를 많이 사용하므로 얼큰한 맛도 즐길 수 있다. 소고기와 감자, 당근, 매운 파프리카 가루(고춧가루)로 얼큰하게 끓여 육개장 맛이 나는 굴라쉬, 꿩고기 육수에 소면을 넣어 잔치국수와 비슷한 후슐레베시 등은 튀기거나 구운 음식에 질린 속을 달래기에 딱 좋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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