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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피해 한센인과 소송하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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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병훈 기자 ] “5개월 된 태아가 배 속에 있는 상태에서 주사기를 태아 머리에 꽂아 독극물을 주입했어요. 죽기 전까지 밤새 배 속에서 몸부림치는데 저도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국가가 한센병 환자에게 강제 불임·낙태 수술을 했던 시절, 피해를 당했던 박모씨(71) 증언이다. 정부는 1948년부터 한센인 강제 단종 정책을 폈고 불과 20~30여년 전까지도 이런 일이 행해졌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피해자 19명은 지난해 뜻있는 변호사들의 무료 법률 지원을 받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이 소송이 지난 22일 일단락됐다. 광주고등법원 민사2부(부장판사 서태환)는 원고의 손을 들어준 원심을 유지하며 사실심의 마지막 단계인 항소심을 마무리지었다. 국가가 상고해도 3심은 법이 올바르게 적용됐는지를 검토하는 법률심이기 때문에 결론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계류 중인 유사 소송(원고 총 651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급격한 근대화과정에서 국가권력의 비대화와 그로 인한 국가폭력은 지난 세기 한국 사회의 그늘이었다. 국가에 의해 저질러진 인권침해 사건은 한센인 사건을 포함해 수없이 많다. 이 사건들을 보면서 왜 이렇게 항상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국가가 피고가 된 소송은 검찰이 국가를 대리한다. 검찰은 소송에서 국가의 잘못을 부인하거나 피해자가 소송을 낼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는 논리를 편다. 하급심에서 져도 항소·상고하는 경우가 많다.

한센인 강제 단종 사건만 봐도 다른 나라와 비교된다.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 한센인에게 이런 일을 행했던 곳은 한국 일본 대만 정도다. 이 중 일본과 대만은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배상했다. 한국 정부는 달랐다. 피해자들의 사과 요구에 침묵으로 일관하며 법정 싸움으로 답했다. 정부가 피해자에게 내놓은 게 일부 있지만 “잘못을 인정한다”는 의미의 배상금이 아닌 차상위계층에 주는 생활지원금 십수만원이 전부다.

정부는 피해자들과 지루한 소송전을 벌이기보다는 명백한 기준을 만들어 일괄 배상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게 과거사 정리차원에서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양병훈 지식사회부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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