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가스 영향으로 WTI 가격이 더 싸져
2000년 이후 첫 수입…실적부진 탈출 안간힘
[ 박영태 기자 ]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등 국내 정유사들이 미국산 원유 도입에 본격 나섰다. 원가를 최대한 낮춰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최근 북미지역 원유 생산량이 늘면서 현지물이 중동산 원유보다 싸진 것도 배경이다.
1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GS칼텍스는 다음달 80만배럴의 알래스카 원유를 국내에 들여온다. 외신들은 GS칼텍스가 미국 에너지업체 코노코필립스를 통해 현물시장에서 원유를 구매했으며 다음달 10일 유조선이 여수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국내 정유회사가 미국 알래스카산 원유를 도입하는 것은 2000년 이후 처음이다. 미국 알래스카 원유는 1996년 금수조치에서 제외된 뒤 한국 일본 중국 등지에 수출됐으나 높은 채굴비용 탓에 생산량이 줄면서 2004년부터는 해외 수출이 전면 중단됐다.
업계에서는 알래스카 원유의 한국 수출이 재개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국산 원유 금수 해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데다 북미 원유가격도 중동산에 비해 낮아져 미국 석유업자들이 판로 확대에 나서고 있어서다.
지난달 30일 현재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91.23달러로 국내 정유사들이 80% 이상 의존하는 두바이유(배럴당 95.01달러)보다 낮다. 북미산 원유는 품질이 중동산에 비해 뛰어나 가격이 비쌌지만 최근 가격이 중동산보다 떨어지는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미국 원유 생산량이 급증하고 있어서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에 따르면 미국 원유 생산량은 2011년 1월 하루 561만배럴에서 올 1월에는 797만배럴로 늘었고 지난 7월에는 853만배럴로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최근 수압파쇄공법 등 채굴 기술이 발전하면서 셰일가스 혁명이 일고 있는 것도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국내 정유사들은 미국산 원유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GS칼텍스는 최근 미국산 비정제유 콘덴세이트(초경질유)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총 40만배럴, 금액으로는 4000만달러(약 416억2000만원)였다. 콘덴세이트는 천연가스에서 나오는 휘발성 액체탄화수소로 이를 정제하면 원유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휘발유 나프타 등을 생산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도 오는 11월 미국산 콘덴세이트 40만배럴을 도입한다. GS칼텍스처럼 일본 미츠이상사로부터 재구매하는 방식이다. 미국산 콘덴세이트가 중동산보다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콘덴세이트 수입 물량의 90% 이상을 이란 등 중동지역에서 조달해 왔다. 한국과 일본 등이 중동에 의존해온 수입처를 다변화하는 차원에서 미국산을 도입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의 콘덴세이트 수요 물량은 하루에 110만배럴가량이며 이 중 절반을 한국과 일본이 차지하고 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미국산 콘덴세이트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덕분에 무관세로 들여올 수 있어 가격이 저렴하다”며 “앞으로도 미국산 원유와 콘덴세이트 도입을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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