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 이후 한국어린이안전재단 설립
15년 후에도 남겨진 상처…"어린이 트라우마 컨퍼런스서 함께 고민해야"
<대담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
고석 한국어린이안전재단 대표(사진)는 1999년 씨랜드 화재 참사에서 유치원에 다니던 쌍둥이 딸들을 잃은 후 어린이 안전 활동에 뛰어들었다. 어린이안전재단을 꾸려 이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사고 예방에 나섰다. 소중한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런 그가 '어린이 트라우마' 치료에 주목했다. 씨랜드 참사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린 당사자인만큼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지함이 묻어났다.
"살아남은 쌍둥이들의 친구들은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됐습니다. 하지만 고통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지고 있죠. 아직도 집안에서 냄새나 연기가 나면 굉장히 괴롭다는 얘기를 들으면 마음이 답답해져요. 아이들을 방치해선 안됩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어린이 트라우마 문제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고 대표는 어린이 트라우마 컨퍼런스를 통해 고민의 장을 마련할 계획이다. 열흘 남짓 남은 컨퍼런스를 앞두고 추석 연휴에도 사무실을 지킨 그다. 10일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위치한 한국어린이안전재단에서 고석 대표를 만났다.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999년 씨랜드 화재 당시 사고 원인 등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38일 만에 장례를 치렀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인 규명을 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유족들이 기금을 출연하고 변호인단이 수임료를 기부해 재단을 만들었죠. 다시는 억울한 어린이 안전사고가 없도록 예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희생된 아이들이 남긴 숙제를 풀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게 된 겁니다."
-씨랜드 사건 이후 어린이 안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나 정부 지원이 개선됐나요.
"씨랜드 사고 이후 국내에서도 '어린이 안전'이란 말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관련 통계도 별로 없었죠. 사고 이후 정부에서도 문제의식을 갖다가 정권이 교체되면서 관심이 사그라들었습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 이후 다시 분위기가 달라졌고요. 장기간 일관성을 갖고 추진해야 하는데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민간 단체의 역할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재단의 주요 활동을 소개해 주시죠.
"연간 만 14세 미만 아동 1000여명이 사고로 사망합니다. 각종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교통, 식생활, 재난 등 사례별로 안전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 직접 찾아가는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 중이죠. 카시트 무료 대여사업, 어린이 안전 관련 연구 등의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오는 19일 어린이 트라우마 컨퍼런스를 개최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씨랜드 사고 이후 저도 트라우마의 당사자가 됐습니다. 생존한 아이들과 그 가족들이 지금까지 괴로워하는 것도 곁에서 지켜봤죠. 이들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됐고요. 지금까지 아동 사고 예방활동에 치중했지만 사고 경험이 있는 아이들이 사후에 겪을 수 있는 트라우마 문제로 관심을 넓히는 게 필요합니다. 어린이 트라우마에 대해 사회에 화두를 던져보자는 취지에서 컨퍼런스를 열게 됐습니다."
-어린이 트라우마 컨퍼런스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민간 단체에서 어린이 트라우마 문제를 꺼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정신과학회와 심리학회 등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맡댄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어요. 사회 전체의 관심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고요."
-향후 계획을 소개해 주세요.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어린이 트라우마 컨퍼런스를 정례화할 생각입니다. 각 지역 트라우마 센터에 어린이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거나 바우처 형태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어요. 전문가들이 모여 문제를 고민하고 정보를 공유할 컨퍼런스가 그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한경닷컴 최유리 기자 now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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