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미국 휘발유값…4년 만에 최저
'오바마 경제교사'였던 서머스 "행정명령 통해 즉각 풀어야"
브루킹스硏 "수출금지 해제하면 GDP 최대 1조8000억弗 증가"
[ 워싱턴=장진모 기자 ] 국제유가가 안정되고 미국의 휘발유 가격이 4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자 미국에서 원유 수출 금지 조치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불렸던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하버드대 교수·사진)이 오바마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그는 9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브루킹스연구소가 주최한 ‘미국의 에너지 안보와 수출 정책’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미국이 원유 수출 금지 조치를 풀면 경제성장과 일자리, 그리고 지정학적 측면 모두 플러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의회가 법을 고치지 않으면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동원해서라도 즉각 원유 수출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빗장 풀어 영향력 강화해야”
서머스 전 장관의 이날 발언은 원유 수출 허용을 반대하는 정유업계와 오바마 정부 내 일부 반대파를 겨냥한 것이다. 반대론자들은 “원유 수출을 허용하면 미국의 휘발유 가격이 올라 미국 경제에 부담이 된다”고 주장한다. 서머스 전 장관은 그러나 이날 연설에서 “미국산 원유가 국제시장에 유입되면 국제유가가 하락하고 국제유가를 벤치마크로 움직이는 미국 휘발유 가격도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유 수출을 허용하면 손해보는 곳은 휘발유 디젤 등 정유제품을 해외에 판매하는 정유업체뿐이라고 지적했다.
브루킹스연구소는 이날 원유 수출 금지 조치가 해제되면 미국 휘발유 가격이 갤런(3.78L)당 9~12센트 떨어진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또 연간 6000억~1조8000억달러의 국내총생산(GDP) 증가 효과가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서머스 전 장관은 러시아가 유럽에 난방용 가스를 공급하는 점을 거론하면서 “미국이 피를 흘리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안보를 강화하려면 원유 수출보다 더 좋은 방안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11월 중간선거 후 본격 논의될 듯
미 정부는 1973년 아랍 국가들이 미국에 대한 원유 수출을 금지해 유가가 급등하자 1975년 에너지보호법을 제정, 자국산 원유 수출에 빗장을 걸었다. 그러나 셰일오일·가스(진흙 퇴적암층에서 뽑아낸 원유) 생산이 늘어나 휘발유 가격이 안정되자 지난해부터 빗장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 미국의 하루 원유생산량은 800만배럴로 5년 전보다 55% 증가했다. 올해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최대 산유국에 오를 전망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미국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3.44달러로 2010년 이후 최저치(이달 초 기준)로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원유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미 정유업체의 가동률은 사상 최고 수준이다.
미 상무부는 지난 5월 “원유 수출 허용 문제를 검토 중”이라고 밝힌 데 이어 6월엔 최소한의 정제만 거친 ‘콘덴세이트’로 불리는 초경질유 수출을 선별적으로 허용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정부가 40년 만에 엄격한 원유 수출 금지 조치를 일부 해제했다”고 보도했다. GS칼텍스가 11일 들여오는 40만배럴의 콘덴세이트가 바로 이 물량이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빗장을 완전히 푸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행정부와 의회가 민감한 이슈를 건드리는 것을 꺼리고 있어서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서머스 전 장관의 발언과 관련, “에너지 시장, 경제적 이해득실, 안보문제 등을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
[한경+ 구독신청] [기사구매] [모바일앱]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