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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바윗길을 가다(78) 설악산 울산바위 번개길 / 장쾌한 크랙· 아찔한 등반선, 짜릿한 번개가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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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률 기자] 첫째 날 PC샹그리라, 둘째 날 요반길, 셋째 날 인클길을 취재등반하겠다는 당초의 계획은 첫날부터 비가 내리는 바람에 일찌감치 수포로 돌아갔다. 오후 3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저녁 9시까지 이어진 비 때문에 둘째 날 요반길 앞에 섰을 때는 크랙을 타고 아직도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울산바위 좌벽에서 기자는 마치 번개가 치듯 장쾌한 크랙라인이 지반에서 정상까지 이어진 멋진 바윗길을 발견했는데 그 길이 어디냐고 물으니 ‘번개길’이라는 것이다.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땅에서부터 정상부까지 이어진 장쾌한 크랙라인은 멋지다 못해 아름다워보였고, 정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점에서 마치 번개가 치듯 자연스럽게 번개표시의 크랙으로 이루어져있어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취재등반지는 자연스레 번개길로 정리되었다.

번개길은 요반길, 비너스길과 함께 한때 울산바위의 3대 노가다길로 불리던 어려운 길이다. 그러나 지상에서 등반선을 바라보기에는 크랙선이 잘 살아있어 등반에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등반 전에 검색을 해보니 개념도에는 모두 다섯 마디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붙어보는 일만 남았다.


설악산 울산바위는 해발 873미터에 너비는 약 2.8킬로미터에 이른다. 암벽등반이 가능한 바위의 폭은 약 600미터에 높이는 200미터. 울산바위의 등반은 1955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올해 창립 69주년을 맞는 한국산악회가 그해 처음 등반을 시도했고 뒤이어 서울대문리대산악회가 울산바위를 등반하며 바윗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울산바위에는 '문리대'가 붙은 바윗길이 적지 않다. 전통의 에코클럽은 1969년 울산바위 중앙계단 좌측에 번개길을 개척했다. 에코클럽은 1974년에 다시 비너스길을 개척하며 기염을 토한다.
 
번개길의 원래 출발지점은 지금은 철거된 울산바위행 철계단 좌측의 작은 크랙이다. 그러나 “그 동안 번개길은 철계단을 이용하여 1피치 확보지점에 도착하는 등 사실상의 1피치 등반은 등한시 되었다”는 것이 오늘 선등을 하게 될 송기승(법무법인 로고스 기획실장/ 하람산악회) 대장의 말이다.


그 말은 곧 번개길 첫째 마디를 정상적으로 등반하려면 처음부터 바닥에서 번개길로 이어지는 크랙으로 등반해야 하지만, 이 길은 오랫동안 등반이 이루어지지 않아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나 있어 우회를 한다는 의미다. 철계단도 완전히 철거된 지금, 예전의 첫째 마디를 원래대로 복원해서 비너스길로 몰리는 발길을 번개길로 이끌어주면 어떨까.

송 대장이 번개길 우측 철거한 철계단이 놓였던 위치에서 등반을 시작한다. 난이도는 높지 않으나 이곳 역시 물이 줄줄 흐르고 있어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이날 함께 등반하는 클라이머들은 하람산악회의 회원들이다.

연 초에 일 년간 활동할 회원수를 정해놓고 치열한 등반을 하는 하람산악회는 그동안 멀티피치 등반과 하드프리 등반으로 등반력을 키워왔다. 이날 등반인원은 모두 8명. 신속한 등반을 위하여 4명 1개조로 2팀으로 나누었다. 또한 제1팀의 3번 등반자는 고정된 자일을 이용하여 베이직으로 등반하기로 했다.


이제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는 둘째 마디. 확보지점에서 약 5미터 정도 직상하여 다이아몬드 형태로 떨어져 보이는 바위의 우측으로 나아가 다시 직상의 큰 크랙을 따라 등반해야 한다. 그러나 거리상 쉽게 넘어갈 수 없고, 볼트거리가 멀어 보인다.

송 대장은 5호 캠(블랙다이아몬드사 캠 기준)을 설치했고 계속 이어지는 크랙에 4, 5, 6호 캠을 이용하여 여늬 때처럼 당당하게 등반을 이어간다. 이어지는 볼트따기 구간에는 리벳이 필요한 지점의 등반이 어려워 보였는데 송 대장은 리벳대신 슬링을 걸치고 오른손으로 누른 상태에서 오른발로 슬링을 지그시 밟고 일어서는데…

둘째 마디는 약 25미터의 거리로, 크랙등반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크랙등반구간에서 볼트따기구간으로 이어진다. 출발하면서는 다이아몬드형 바위의 아래 부분에 발홀드가 좋지 않으므로 크랙에 왼손을 깊이 집어넣으면 손가락 끝에 걸리는 홀드가 있을 것이다. 이 홀드를 확실히 잡고 일어서서 과감하게 다이아몬드의 오른쪽 아래 면을 잡고 레이백으로 올라서면 수월하다.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크랙구간에서는 몸을 크랙에 집어넣지 말고 레이백을 적절히 구사하면 무난하게 돌파가 가능하다.


이어지는 볼트따기 구간은 딱 한 스텝이 선등이나 후등 조금 까다롭다. 볼트를 밟고 일어서도 다음 볼트까지 손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송 대장은 이 지점을 통과하기 위해 볼트 옆에 있는 오래된 굵은 못인 ‘리벳’에 슬링을 살짝 걸고 일어서서 다음 볼트에 퀵드로를 걸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인공등반에서는 리벳등반을 위한 작은 등반장비가 따로 있기는 하다.

둘째 마디는 큰 부담 없이 재미있게 등반할 수 있는 구간이다. 그러나 거리 약 25미터의 셋째 마디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번개길 등반의 참맛은 셋째 마디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출발부터 등반이 끝나는 시점까지 선등자는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어느 등반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크랙 안쪽으로 파고들면 등반이 어렵고 크랙의 밖으로 나가면 밸런스가 무너져 추락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숱한 바윗길에서 잔뼈가 굵은 송 대장은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등반하면서 쉬엄쉬엄 등반을 이어나갔고 마지막 10여 미터를 남겨두고는 5호 캠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다음 등반을 이어가던 송 대장이 추락을 외쳤다. 둘째 마디 확보지점에서 지켜 본 추락거리가 거의 10미터에 가까울 정도로 긴 추락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5호캠을 설치하고 다시 4호 캠을 설치하려다가 한 번에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해서 캠 설치를 생략했죠. 과감하게 몸을 밖으로 빠져나와 등반하던중 밸런스가 무너졌어요. 결국 10미터 이상을 추락하는 쓴 맛을 보았습니다. 사선크랙이기에 추락을 하면서 먼저 엉덩이에 이어서 등이 부딪쳤고, 이에 따른 충격으로 왼발을 디디는 순간 왼쪽 엉덩이와 등짝에 상당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송 대장은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다시 자일을 잡아당기며 등반을 이어나간다. 차분하게 4호 캠을 설치하고 이번에는 자신 있게 넘어가 셋째 마디 확보지점에 무사히 확보했다. 같은 코스, 같은 동작이라고 하더라도 캠을 설치할 때와 설치하지 않았을 경우의 자신감은 다르고, 결국 등반의 성공여부는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셋쩨 마디는 가파른 수직구간을 돌파한 다음 익숙하지 않은 반침니성 크랙을 등반하는 구간이다. 침니성 크랙을 돌파하는 일이 만만치는 않다. 다행히 볼트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잘 설치되어 있다. 송 대장이 추락한 것은 난이도보다는 약간의 방심에서 비롯된 것 같다. 추락이란 원래 어려운 지점보다 만만하게 본 지점에서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넷째 마디. 넷째 마디는 마치 셋째 마디 등반을 하며 고생한 것에 대한 보답인 듯 어렵지 않다. 출발지점은 어렵지 않은 슬랩이다. 거리는 약 40미터. 설악산 특히 울산바위의 바위결은 촘촘히 살아있고 덕분에 발이 밀리지 않아 슬랩등반이 수월한 편이다.

잠시 인수봉과 선인봉의 바윗결도 울산바위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중반 지점에서는 반 침니가 나타난다. 침니 위쪽에 볼트가 있으므로 이곳에 퀵드로를 걸어 추락에 대비하고 양팔과 양발을 벌려 스태밍자세로 침니 위를 누르듯이 등반하면 된다. 마지막 구간은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등반이 수월한 편이다.

그런데 막상 넷째 마디 등반을 끝내니 이어서 나타나야 할 다섯째 마디는 보이지 않는다. 번개길은 딱 4마디의 바윗길이었던 것이다. 확보를 풀고 정상에서 송기승 대장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오랜만에 추락까지 경험했는데 그가 직접 등반하고 느낀 번개길의 난이도는 어느 정도일까? 참고로 송 대장은 인수봉의 빌라길과 블루마운틴을 어렵지 않게 자유등반하는 재야의 고수 중 한 명이다.


“울산바위 벽등반에 있어서 난이도가 어느 정도이냐고 물어보면 참으로 난감합니다. 그 이유는 특히 요반길, 번개길, 비너스길의 넷째 마디 볼트따기 부분의 자유등반, 인클길 등의 경우 에는 순수하게 자유등반이 어렵고, 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등반의 난이도가 변하기 때문이죠”

그는 또 “울산바위 벽 등반은 쉬운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클, 인클주니어, 비너스, 번개, PC샹그리라, 요반길은 힘이 들 뿐만 아니라, 그 동안의 편안한 등반을 벗어나 바위에 몸을 비비고 문지르며 느끼는 등반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어떤 방식의 등반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등반에 있어서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다면 점점 넓어져야 할 가슴은 그대로 멈출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소감을 피력한다.

“요반길 일곱째 마디가 너무 힘들어서 요반길 등반을 포기하는 클라이머나, 비너스길에 등반자가 밀려 부득이 기다리고 있는 클라이머라면 지체하지 말고 번개길을 등반함으로써 요반길등반의 맛과 비너스길 등반의 즐거움을 동시에 느껴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는 앞으로 울산바위를 등반하려는 클라이머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예전에는 번개길 등반을 마치면 철계단을 통해서 하산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은 곧 예전 번개길 등반시에는 철계단을 오르는 갤러리들의 시선을 적지 않게 의식했어야했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나 이제 번개길 등반은 그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마칠 수 있다.

넷째 마디 등반이 끝나면 좌측으로 약 15미터 이동하여 확보점에서 세 번의 하강을 하게 된다. 중요한 점은 첫 번째 하강시 하강방향으로 좌측으로 많이 돌면서 내려와야 하강하는 클라이머가 위험한 바윗골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선등자가 계속 수직으로 하강한다면 확보점을 놓치고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으니 각별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선등자는 후등자를 위해서 확보점에 자일을 고정시켜주어야 하고 계속 한 명씩은 남아서 하강자에게 하강방향을 외쳐주어야 안전한 하강이 보장된다.

두 번째 하강은 PC샹그리라 넷째 마디 확보지점이다. 이곳에서 한 번 더 하강하면 지상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이곳에서 하강할 때는 이어지는 오버행의 바윗결에 자일이 손상될 수 있으니 엉덩이를 아래로 쑥 내려 몸이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면서 곧장 하강해야 한다. 


번개길 등반으로 3일간의 울산바위에서 3일간의 취재등반이 끝났다. 당초 계획에 비하자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등반이었지만 그러나 변화무쌍한 설악의 여름날씨에 3일 연속 등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들바위 계조암 아래 식당에서 지낸 모처럼 만의 비박도 괜찮은 경험이었다.

사정상 최근 2개월간 기사연재가 중단되어 “기사가 왜 중단되었느냐”는 문의도 적지 않게 받았다. 연예기사에 비하자면 조회수는 형편없이 적고 광고주도 붙지 않아 천덕스러운 신세지만 그래도 기사를 아껴주는 산악인들을 위해 더욱 힘을 내본다.

바윗길은 아직도 무수히 많이 남아있고 가야할 발걸음도 바쁘다. 그러나 누가 말했든가 “등반할 수 있는 훌륭한 바윗길들을 보물처럼 많이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부자와도 같다” 기자는 다시 계조암에서 한국산악회 함기철 안전대책위원장이 흑범, 석주길 등반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설악C지구로 뛰듯이 발걸음을 떼어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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