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 소송에 '빚폭탄' 대신 디폴트 선택
위기 전이는 없을 듯…협상 여지는 남겨 둬
[ 이심기/김순신 기자 ]
아르헨티나가 미국계 헤지펀드와 막판 채무조정 협상을 벌이던 지난 30일 오후 4시(현지시간) 아르헨티나 증시는 6.5% 상승 마감했다. 페소화 가치도 큰 변동 없이 소폭 하락하는 데 그쳤다. 아르헨티나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연 10.1%에서 8.8%로 하락하며 강세를 보였다. 시장에선 막판 협상타결을 기대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헤지펀드와 최종 협상 결렬
이번 디폴트 선언의 배경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1000억달러의 디폴트에 직면한 아르헨티나 정부는 93%의 채권단과 2005, 2010년 두 번에 걸친 채무조정을 통해 원금의 최대 80%를 깎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어소시에이츠와 NML 2곳이 채무조정을 거부하고 13억달러에 달하는 원금과 이자 전액을 상환할 것을 요구했다. 헤지펀드의 요구를 수용하면 ‘채무자 동등조항’(RUFO)에 따라 아르헨티나가 채무조정에 합의한 채권자에게 지급해야 할 채무가 1200억달러로 늘어나게 된다. 외환보유액이 290억달러에 불과한 아르헨티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결국 헤지펀드는 2013년 뉴욕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헤지펀드에 채무 전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또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아르헨티나 정부가 채무조정에 응한 채권자에게 이자지급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날 협상이 결렬되자 악셀 키실로프 아르헨티나 재무장관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해 협상에 임했지만 상황을 바꿀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앞으로 계속 협상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2001년과는 다르다”
아르헨티나가 2001년에 이어 두 번째 디폴트에 빠지게 됐지만 국제금융시장은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이번 사태의 파장이 아르헨티나 밖으로 전이되지 않을 것으로 본 것이다. 국가가 디폴트를 선언하면 직접 대외결제를 못하고 해외 자금조달도 어려워지지만 아르헨티나는 2001년 디폴트 이후 이미 대외결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다. 또 아르헨티나는 10년 이상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에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들이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거의 없다. 클라이드 워들 HSBC 통화 전략가는 “이번 사태의 파장이 아르헨티나 밖으로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2001년 아르헨티나 채권은 JP모간 신흥국 부채지수의 20%를 차지했지만 현재는 1.3%에 불과하다.
다만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회복 단계에 접어든 아르헨티나 경제엔 치명타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은 미국의 뉴욕 멜론은행을 통해 대외결제를 해왔지만 이마저도 불가능해져 미 달러화로 현금거래를 하지 않는 한 무역거래가 불가능해진다. 박종근 KOTRA 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장은 “정부가 기업은 물론 개인에게까지 외환통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외신들은 마틴 레드라도 전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총재의 발언을 빌려 “올해 경제성장률이 최소 1%포인트 낮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김순신 기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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