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120원 '동전주식' 수모…해외 매각 위기 몰려
SK그룹 인수 후 과감한 투자…치킨게임 승자로
[ 김현석 기자 ]
‘하이닉스’라는 이름은 오랜 기간 부실 기업의 대명사였다. 5년간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과 10년의 매각 추진이 남긴 유산이다.
그러던 이 회사가 부채비율 54%의 초우량 회사로 거듭났다. 같은 업종의 삼성전자 부채비율은 30.95%다. 그야말로 미운오리 새끼에서 화려한 백조로 변신한 것이다.
SK하이닉스의 주가는 1년 만에 딱 두 배가 돼 현재 시가총액 3위에 올라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바로 뒤다.
◆위기와 부실, 치킨게임
1983년 출범한 현대전자(SK하이닉스 전신)는 현대그룹 우산 밑에서 막대한 투자를 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도 빅딜을 통해 LG반도체를 인수, 오히려 몸집을 불렸다. 하지만 2000년 메모리 업계의 치킨게임이 거세졌다. 현대전자는 왕자의 난으로 2001년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오자 홀로 투자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2000년 말 부채비율은 283%로 치솟았고 2001년 1조91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2001년 10월 채권단 공동관리(워크아웃)에 들어간 하이닉스는 온갖 수모를 겪는다. 채권단이 매각에 들어가자 경쟁사인 미국 마이크론과 독일 키몬다에 생산라인을 모두 공개해야 했다. 2001년 말 마이크론 인수안이 확정됐다. 임직원들은 경쟁사에 팔려간다며 피눈물을 흘렸다. 다행히 이듬해 5월 이사회는 기술 유출을 이유로 극적으로 매각안을 부결시켰다.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하면서 주식 수는 2003년 초 52억주까지 급증했다. 21 대 1 감자가 추진됐고, 주가는 120원대까지 추락했다. 당시 증시 하루 거래량의 40~50%를 하이닉스가 차지했다. 페니 주식, 동전 주식이라는 비아냥을 받아야 했다.
2003년 반도체 업황이 안정을 찾자 하이닉스는 2003년 3분기부터 2007년 3분기까지 17개 분기 연속 흑자를 냈다. 부채비율이 71%까지 떨어지면서 2005년 7월 워크아웃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2007년 다시 위기를 맞았다. 2007년 4분기부터 7개 분기 적자를 이어갔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불어닥쳤다. 2008년 영업손실만 1조9210억원에 달했다. 2009년 1분기 말 부채비율은 다시 234%로 치솟았다.
이 와중에 채권단은 계속 매각을 시도했다. 2009년 효성이 인수할 뻔했으나 막판 중단됐다. 2011년 채권단이 다시 매각 입찰에 나서자 SK그룹과 효성, STX 등이 참여했다.
◆치킨게임 끝, 분기 영업익 1조원 시대
하이닉스는 2012년 2월 SK 인수가 확정됐다. 재무구조가 안정적인 SK의 지원을 받아 2012년 전년보다 10% 이상 늘어난 3조8500억원을 투자했다. 청주에 낸드플래시 생산라인인 M12를 준공하고, 여러 기업을 인수했다. 이탈리아의 아이디어플래시를 사들여 유럽기술센터를 세웠고, 미국의 솔루션 회사인 LAMD를 인수, SK하이닉스메모리솔루션스로 이름을 바꿔 운영 중이다.
특히 피인수 직전인 2012년 2월 경쟁사인 일본 엘피다가 파산, 메모리 업계의 ‘30년 치킨게임’이 종결됐다.
업계에 4개사만 남자 시장은 급격히 바이어스 마켓(Buyer’s Makert)에서 셀러스 마켓(Seller’s Market)으로 전환됐다. 또 IT 기기의 모바일화 속에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가 폭증했다. 시장이 공급자 위주로 바뀐 데다 수요가 급증하면서 돈을 벌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시장인데, 새 진입자는 없다. 다른 제품이라면 중국 업체들이 마구 시장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러나 메모리는 다르다. 미세공정기술이 10나노미터(1나노=1억분의 1m)대의 극한까지 좁혀진 데다 ‘규모의 경제’를 갖춘 생산라인 하나를 세우려면 10조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중국 업체가 엄두를 내기 어려운 업종이 됐다는 얘기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2분기 1조1140억원으로 분기당 1조원 영업이익 시대를 열었다. 4분기 중국 공장 화재로 연속 기록은 깨졌지만, 올 들어 다시 1조원 이상 벌어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부채비율은 2011년 119%에서 2012년 91%로 낮아졌고 작년 말 59%, 올 6월 말에는 54%로 떨어졌다.
SK하이닉스는 올초 직원들에게 연봉의 30% 안팎을 성과급으로 줬다. 덕분에 지난 1분기 SK하이닉스 임직원의 올해 1분기 평균임금은 2750만원으로 삼성전자(1분기 평균 2100만원)보다 높았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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