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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벨벳, 외산 밀어낸 토종 벨벳…매출 90%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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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단지, 혁신의 현장
국내 최초 벨벳 제조사 영도벨벳

염색·가공까지 일괄생산…아르마니·버버리에 납품
2015년 1억달러 수출 목표

LCD패널용 러빙포 개발…삼성·LG전자 등에 공급



[ 민지혜 기자 ]
벨벳은 털이 촘촘하게 박힌 비단이다. ‘비로도’라고도 불리던 벨벳은 예전에 부자들의 전유물로 통했다.

100% 수입에 의존하던 벨벳을 “우리가 한번 만들어보자”며 나선 곳은 영도벨벳이라는 대구의 작은 섬유업체였다. 이 회사는 제직부터 염색, 가공에 이르는 전 과정을 구미공장에서 일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400만달러(약 41억원)어치를 수출한 데 이어 내년에는 1억달러(약 1020억원)를 목표로 잡을 만큼 해외에선 이미 유명한 기업이다. 매출액의 90%가 수출이다. 유명 브랜드인 ‘조르지오 아르마니’ ‘버버리’ ‘자라’ 등에서 영도벨벳 원단으로 옷을 만들고 있다.

○끊임없는 기술 개발이 원동력

대구 중구 삼덕동에 있는 벨벳갤러리 ‘영도다움’에서 만난 류병선 회장은 “영도벨벳의 강점은 모든 과정을 직접 만드는 생산시설과 염색, 컴퓨터 프린팅 기술에 있다”며 “물빨래가 가능한 초극세사 폴리벨벳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도 우리 연구소에서 매년 끊임없이 신제품을 연구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영도벨벳은 1970년 아세테이트벨벳, 1980년 면벨벳에 이어 1990년엔 물에 빨 수 있는 초극세사 폴리벨벳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대한민국 세계일류상품전에 참가해 벨벳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수출량을 인정받기도 했다.

류 회장은 창업주 고 이원화 회장의 아내다. 고무신 장사를 하던 창업주가 1966년 부산 국제고무공장에 방한화용 털을 납품하면서 벨벳을 알게 됐고, 1971년 처음으로 벨벳을 자체 생산한 것이 영도벨벳의 시초다. 여러 가지 비율로 날줄과 씨실을 엮어내 털의 돌기를 균일하고 촘촘하게 만들었고 다양한 색감으로 염색하는 기술까지 갖췄다. 1995년 구미공장 신설 이후 닥친 외환위기로 한때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부부가 사재를 털어 회사를 살려냈다.

○‘벨벳에 미친 여자’가 별명

2004년 창업주가 타계한 뒤 류 회장은 남편의 뜻을 이어나갔다. 류 회장은 “기술력만이 영도벨벳이 살길이라는 창업주의 뜻은 곧 내 생각이기도 하다”며 “하루 종일 벨벳 생각만 한다”고 말했다. 류 회장의 별명이 ‘벨벳에 미친 여자’가 됐을 정도다. 40년 넘게 살던 삼덕동 집 옆에 전시관 겸 매장(영도다움)을 만든 것도 효율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다. 영도다움은 최근 두 달 동안 중국인 관광객 3000여명이 다녀갔고, 주말엔 벨벳 조화를 만드는 꽃꽂이 수업이 열리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LCD패널용 러빙포

영도벨벳은 지난해 삼성전자 LG전자 등에 LCD(액정표시장치) 패널용 러빙포를 10억원어치 납품했다. 류 회장은 “휴대폰 LCD패널을 만드는 공정에서 쓰이는 러빙포를 개발하는 데 3년 넘게 걸렸다”며 “중국 대만 등에 수출하면 앞으로 매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영도벨벳은 해외에선 ‘스리 이글스 벨벳’으로 불린다. 원단을 롤에 감아 걸도록 만든 모서리 천에 세 마리의 독수리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류 회장은 “100년, 200년 지속가능한 기업, 독수리처럼 비상하는 기업을 만들어 경북 섬유산업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꿈”이라고 강조했다.

대구=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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