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 - '소년원 갱생 프로그램'의 힘
10년째 소년원에 컴퓨터 기자재 기증·교육
매년 경진대회…대학 진학땐 장학금 지급
소년원생 "PC 덕에 목표의식 되찾았어요"
[ 임근호 기자 ]
#1.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는 박모씨(25)에게 2006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소년원에 수감돼 있던 열일곱의 그에게 하루하루는 그저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불과했다. 소년원을 나가서도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하지만 2006년 삼성SDS가 주최한 컴퓨터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으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박씨는 “대회를 위해 밤 늦게까지 공부에 몰두하면서 나도 뭔가를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처음 깨달았다”며 “이때 얻은 성취감이 바탕이 돼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사이버대학 사회복지학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2. 김모씨(27)는 지금은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중견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고등학생 때 소년원에서 2년간 복역한 과거가 있다. 오토바이를 훔친 죄 때문이었다. 그는 “미래도 없고 꿈도 없는 비행청소년이었다”며 “소년원 시절 컴퓨터 경진대회에 나가지 않았다면 그때와 크게 달라진 삶을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4년 나간 대회를 계기로 그는 ‘전산응용건축제도 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대학에까지 들어갈 결심을 했다. 그는 “소년원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미 자신들은 사회에서 낙인이 찍혔고 어떻게 하든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소년원 후배들에게 컴퓨터도 가르쳐주면서 제 인생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서포터스 역할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25일 서울 역삼동 삼성SDS 멀티캠퍼스 사옥 17층 대회의실에선 아이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1등부터 3등까지 성적 우수자를 호명할 때마다 교복 차림의 남녀 학생들이 나와 상을 받았다. 올해로 19회째를 맞은 삼성SDS의 ‘푸르미 아이틴 톱 경진대회’였다. 전국 10개 소년원에서 3명씩 대표로 출전한 아이들은 오전에 마이크소프트(MS)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활용능력을 1000점 만점으로 평가하는 시험을 치렀다.
1등은 985점을 맞은 광주소년원 조모군(19·고룡정보산업학교)에게 돌아갔다. 조군은 “지난 2월에 정보기술자격(ITQ) 시험을 치렀는데 선생님이 ‘컴퓨터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며 칭찬을 해준 덕분에 이번 대회에 출전하게 됐다”며 “주말에도 밤 9시까지 공부한 덕분에 이렇게 최우수상을 받아 기분이 너무 좋다”며 웃었다. 그는 “오는 10월에는 I-TOP 경진대회에 나갈 볼 생각”이라며 “컴퓨터를 공부하면서 다시는 여기 들어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절실히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잘 가르친 선생에게 주어지는 교사부 1등상을 받은 서울소년원 임수용 교사(고봉중·고)는 “주기적으로 사고를 치던 아이들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거짓말처럼 말을 잘 듣게 됐다”며 “단지 컴퓨터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어떤 목적 의식을 갖고 대회에 나가 상을 타면서 자신감을 얻는다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삼성SDS가 소년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3년 컴퓨터를 기증하면서부터다. 삼성SDS 직원들은 상시적으로 안양소년원에 찾아가 컴퓨터를 가르쳐주고 있다. 크리스마스에는 직원들이 산타할아버지로 분장해 선물 꾸러미를 들고 전국 소년원을 방문한다. 아직 꿈을 꿀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소년원 아이들이 정보화 소외계층으로 전락해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전동수 삼성SDS 사장은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집안 환경이 어렵다 보니 체계적으로 컴퓨터를 배우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삼성SDS는 ‘스마트 브릿지’라는 이름으로 전 사회계층에서 정보화 격차를 줄이는 데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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