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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데스크] '행복한 KB금융 직원'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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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춘 금융부장 hayoung@hankyung.com


올 프로야구 최대 화두는 ‘타고투저’다. 타자는 펄펄 나는 반면 투수는 힘을 못쓴다. 툭하면 핸드볼 스코어가 나온다. 원인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다. ‘스트라이크존이 너무 좁다’느니, ‘공 반발력이 좋아졌다’느니 말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타고투저가 있었다. 1987년이 대표적이다. 그해 홈런이 갑작스레 30%가량 늘었다. 사무국 조사결과 의심가는 곳은 아이티였다. 당시 메이저리그에 공인구를 공급하던 곳은 롤링스라는 회사였다. 롤링스는 인건비가 싼 중남미 국가 아이티에서 수(手)작업으로 공인구를 만들었다. 그런데 그해 만들어진 공만 유달리 실땀이 단단하게 조여져 실밥이 덜 도드라졌다. 투수들은 변화구를 던지기 힘들게 된 반면 타자들이 친 공은 멀리 나갔다.

아이티 국민 행복하게 만든것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아이티 정정(政情)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1986년 독재자 장 클로드 두발리에가 축출되자 신이 난 노동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실밥을 세게 조였다는 것이다. 이듬해인 1988년 아이티에 정치적 혼란이 다시 찾아왔고, 메이저리그 홈런 수도 29% 줄었다. 이는 ‘행복한 아이티인 가설’로 불리며, 야구가 얼마나 작은 것에 영향받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일컬어진다.

여기서 야구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아이티인을 행복하게 만들었던 조건은 어떤 기업, 어떤 조직에서나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배구조 안정이 바로 그것이다.

작년부터 금융권 화제의 주인공은 KB금융그룹이다. 도쿄지점 부당대출, 국민주택채권 위조, 개인 정보 유출사고가 이어지더니만, 급기야 전산교체를 둘러싸고는 최고경영진 간 내분까지 벌어졌다.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은 나란히 중징계를 통보받고, 지난 26일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에 출석했다. 그날 현장에서 마주친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 직원들은 애써 서로 외면했다고 하니, 과연 같은 회사인가 싶을 정도로 최고경영진 간 틈이 벌어졌다는 느낌이다.

따지고 보면 KB금융의 지배구조나 경영진에서 촉발된 불안정성은 오래됐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이 합병한 뒤부터 계속됐다고 할 수 있다. 김정태 황영기 강정원 어윤대 민병덕 씨 등 역대 최고경영자(CEO)가 줄줄이 징계를 받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들은 연임을 위하거나, 자신의 성과 과시를 위해 여기저기서 마찰을 빚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행복해질 틈 없었던 KB 직원

죽어나는 건 KB금융 직원들이었다. ‘이리 줄서라, 저리 줄서라’는 경영진 등쌀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다. 주인 없는 회사에서 주인 행세를 하려는 감독당국의 욕심까지 더해져 도무지 행복해질 시간을 갖지 못했다. 이를 반복하다 보니 압도적 리딩뱅크 위상은 온데간데없어졌다.

물론 임 회장이나 이 행장은 억울할 것이다. 금감원이 무리해서 이들을 중징계로 내몰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털고 갈 것은 털고 가야만 한다. 제재심의위원회 결정이 나면 뭐가 잘못됐는지를 곰곰 따져보자. 제도가 잘못됐으면 제도를, 관행이 잘못됐으면 관행을, 사람이 잘못됐으면 사람을 과감히 뜯어 고쳤으면 한다. 그래서 직원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경영진이 아닌, 행복하게 만드는 경영진이 됐으면 한다. ‘행복한 KB금융 직원’이 만들어 내는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를 보고 싶다. 현재로서는 어디까지나 가설이겠지만.

하영춘 금융부장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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