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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한국의 부자는 '신사임당'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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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5주년 '5만원권'…국민경제 모습을 바꿨다



“미국 신사는 금발 여성을 좋아하고 한국 부자는 신사임당(5만원권 화폐 인물)을 좋아한다.”

5만원권의 ‘품귀현상’이 벌어지면서 마를린 먼로 영화를 빗대어 나오는 얘기다. 시장에서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는 5만원권이 올해로 발행 5주년을 맞았다. 총 44조원 이상이 발행되어 전체 화폐발행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6%를 넘었다. 36년 만에 등장한 최고액권인 5만원권이 유통되면서 국민경제의 모습도 바뀌었다. 기존 고액권이던 1만원권 수요의 상당 부분이 5만원권으로 대체되었고 10만원 수표 사용이 급감했다. 5만원권 등장으로 한층 얇아진 지갑은 생활도 편리하게 했다. 고액권의 높은 수요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증가하면서 미국·유럽 등 주요국에서도 고액권이 인기를 끌고 있다.

1만원권 발행 36년 만에

2009년 6월23일. 우리나라 최초 5만원권이 발행된 날이다. 이날 한국은행 본점 앞에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밤을 세워 신권을 기다렸다. 36년 만에 등장한 최고액권에 국민의 관심이 그만큼 뜨거웠던 것이다. 어느 새 발행 5주년을 맞은 5만원권은 원화를 대표하는 화폐로 자리잡았다. 휴대가 간편하고 현금으로 큰 돈 거래시에도 편리하다. 경조사비 지출 단위를 높였다는 볼멘소리(?)도 있다. 보통 경조사비는 3만, 5만, 7만원 단위로 지출됐지만 5만원권 발행 후에는 5만, 10만원 단위로 지출되는 경향이 큰 까닭이다. 한국갤럽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축의금으로 5만원 이상을 지출한다고 밝혔다.

5만원권의 총 발행액은 44조4767억원이다. 5만원권의 수요가 계속 늘어나면서 지난해 화폐 발행잔액 중 66.6%를 차지했다. 발행 비중은 첫해(2009년) 28%에서 2011년 56%, 2012년 63%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5만원권 수요가 늘어나면서 10만원 수표 사용은 크게 줄었다. 작년 상반기 10만원 수표의 하루 평균 결제 규모는 119만5000건을 기록, 전년 동기(161만1000건)에 비해 25.8% 감소했다. 신용카드 사용의 확산과 금융위기 등의 영향도 있지만 5만원권이 발행되기 시작한 2009년부터 전년 대비 17.9% 줄었고 계속해서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장농 속으로 숨는 5만원권

5만원권은 화폐발행액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함에도 시중에서 보기 어렵다는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그많은 5만원권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개인 지갑· 장롱 등 국민이 보유한 지폐는 46억5600만장이다. 이 중 5만원권은 8억6100만장으로 43조원을 웃도는 금액이다. 이를 인구 수로 나눠보면 성인(2014년 추계인구 3996만명) 한 사람당 평균 21.6장이다. 2011년 1월 말에 1인당 10.6장이었으나 3년 만에 5만원권 보유 장수가 두 배로 늘어난 셈이다.

5만원권이 시중에서 자금 순환이 되지 못하는 현상은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5만원권의 2013년 환수율은 48.6%. 2년 전보다 10% 포인트이상 감소했다. 1만원 환수율(94.6%)에 비해면 턱없이 낮은 비율이다. 환수율은 특정 기간 동안 한은의 화폐 발행량에 대한 환수량이다. 환수율이 떨어졌다는 것은 현금이 시중에 풀렸다가 한은 금고에 돌아오지 않는 비중이 커졌다는 얘기다. 현금 환수는 사용자가 더러워진 돈을 새 돈으로 바꾸거나 5만원 1장을 1만원권 5장으로 바꾸는 것 등의 권종별 교환, 금융기관이 운용 규모를 초과하는 돈을 중앙은행에 지급 준비금으로 예납할 때 이뤄진다. 5만원권의 낮은 환수율은 고액자산가와 자영업자의 개인 금고, 사설 카지노 등의 지하경제로 숨어들어갔거나 외국인 근로자 등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갔을 가능성 등 여러 가지 추정이 나오고 있다.

고액권 수요 증가는 세계적 추세

고액권 중심의 화폐 수요 증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화되었고 현금을 보유해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기업과 자산가가 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세계적인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현금 보유에 따른 기회비용이 적다는 점도 고액권 수요를 부추기고 있다. 2009년 화폐액면 체계가 변경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유럽·일본·캐나다 등 주요국에서도 고액권의 발행액 비중이 2008년 이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미국 시중에서 50달러와 100달러권 비중은 2008년 말 80.8%에서 지난해 말 83.4%로 높아졌다. 일반 시민이 100달러권을 사용하는 빈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발행하는 유로화 중 100유로권 이상 고액권의 발행액수도 31.2%에 이른다.

'인기 상한가' 5만원권 조폐공사엔 '미운오리'

시장에서 인기를 한몸에 받아 ‘품귀현상’까지 벌어지는 5만원권. 하지만 조폐공사 입장에서 5만원권은 ‘미운 자식’이다. 5만원권이 발행되면서 신규지폐 제조량이 5년 사이에 3분의 1로 줄었기 때문이다. 이에 조폐공사 수익도 적자로 돌아섰다. 2012년 조폐공사가 제조해 한국은행에 공급한 지폐는 총 5억5000만장이다. 5만원권 발행 전인 2008년 공급량 17억1000만장의 32.2%에 불과하다. 이 여파로 조폐공사의 지폐공급 매출은 2008년 1321억원에서 지난해 785억원으로 40.6% 줄었다. 당기순이익은 2008년 56억원 흑자에서 2011년 5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특히 2012년 영업이익도 21억 적자를 냈고 당기 순손실은 60억원으로 커졌다.

5만원권 발행 후 조폐공사의 지폐 공급이 크게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5만원 고액권의 발행으로 지폐 제조 물량 자체가 줄었고 1만원권 등에 비해 지폐 수명도 훨씬 길 것으로 예측되는 까닭이다. 1만원권의 수명은 약 100개월이다. 5만원권은 2009년 발행해 아직 그 수명을 알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은행 관계자는 “5만원권은 비교적 깨끗하게 사용돼 환수된 후 다시 방출되는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5만원권을 포함한 지폐는 모두 종이가 아닌 100% 면으로 제작된다. 지폐를 넘겨받은 한은이 국제 면화값 시세 등에 따라 장당 200~300원 정도 비용을 조폐공사에 지불한다. 5만원권은 한은 본점과 각 지역본부 지하에 있는 대형 금고로 옮겨지는데 그곳에 각각 보관된 지폐의 양은 기밀사항이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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