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한민국예술원에 회원 탈퇴서를 내 논란을 빚은 천경자 화백 측이 이번에는 천 화백의 작품을 토대로 제작된 아트상품의 판매를 놓고 갤러리현대와 갈등을 빚는 것으로 알려졌다.
갤러리현대는 20년 전 천 화백 본인과 직접 아트상품 제작에 대한 약정서를 맺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천 화백 측은 약정서 자체가 무효라며 반발하고 있다.
26일 천 화백 측과 갤러리현대, 서울시 등에 따르면 천 화백의 장녀 이혜선 씨는 최근 서울시를 통해 갤러리현대에 아트포스터 판매에 대한 이의를 제기했다.
천 화백이 지난 1998년 서울시에 작품 93점과 전 작품에 대한 저작권을 기증했기 때문에 현재 천 화백의 작품에 대한 저작권은 서울시에 있다.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 이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명화를 만나다-한국 근현대회화 100선'에서 판매된 아트포스터. 여기에 '길례언니'와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등 천 화백의 작품 2점이 포함된 것이다.
해당 업체는 갤러리현대에서 포스터를 구매해 판매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천 화백의 저작권을 보유한 서울시가 갤러리현대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갤러리현대는 "1995년 맺은 약정서에 따라 당시 제작했다가 남은 상품을 이번에 판 것"이라는 입장이다.
당시 천 화백뿐 아니라 박수근·장욱진·유영국 화백 측과도 같은 내용의 약정서를 맺었으며 최근에 새로 제작한 상품이 아니므로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게 갤러리 현대의 주장이다.
하지만 천 화백 측은 "약정서에 날짜가 없고 천 화백의 도장도 없는 등 문제가 있기 때문에 약정서 자체가 무효"라며 "포스터 제작 역시 유효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연합뉴스가 입수한 약정서를 보면 천 화백과 갤러리 현대 간에 "'미술품 Reproduction'에 사용되는 저작권에 관한 계약을 체결한다"고 적힌 해당 문서에는 계약 일자가 쓰여있지 않다.
천 화백의 서명은 있지만 도장은 찍혀 있지 않다.
"갑(천 화백)은 대상 작품에 대한 저작권의 권리를 을(갤러리현대)에게 양도한다"고 돼 있지만, 대상 작품이 어떤 것인지 명시되지는 않았다.
갤러리현대 측은 서류상의 미흡함을 인정하면서도 "분명히 당시 사간동 본관에서 박명자 회장이 직접 천 화백에게 사인을 받았다"며 "포스터에도 1995년에 저작권을 취득한 부분이 명시됐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천 화백 측은 포스터가 95년에 제작된 게 맞는지 직접 검사를 의뢰하겠다며 서울시를 통해 갤러리현대에 아트포스터를 요청하기도 했다.
천 화백 측은 서울시를 통해 갤러리현대 측에 해당 약정서가 무효라는 점을 인정하고 아트상품 판매를 중단하고 다른 작품의 이미지를 외부에 제공하지 말 것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갤러리현대는 아트상품 판매 중단 등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약정서가 무효라는 점은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갤러리현대 관계자는 "약정서가 무효라는 주장은 인정할 수 없다"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불거지자 최근 갤러리현대는 논란의 소지를 없애고자 같은 내용의 협약을 맺었던 박수근·장욱진·유영국 화백 측에 연락해 양해를 구하고 당시 약정서에 날짜를 추가해 재서명을 받기도 했다.
서울시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 관계자는 "천 화백이 시에 작품과 저작권을 기증하기 이전에 벌어진 상황이라 시에서 관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서 "서로간의 합의를 권유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번에는 아트상품을 놓고 갈등이 불거지긴 했지만 천 화백 측이 작품을 놓고 문제를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작년 초에는 딸 이 씨가 서울시의 관리 소홀로 작품이 훼손됐다며 서울시 측에 기증 작품과 저작권의 반환을 요구한 바 있다.
천 화백의 고향인 전남 고흥군은 천 화백 가족이 관리 소홀을 이유로 작품 반환을 요청해 수년간 갈등을 빚다 지난 2012년 기증받았던 작품 60여 점을 반납했다.
'꽃과 영혼의 화가' 천 화백은 1998년 작품 93점을 서울시에 기증하고 미국 뉴욕으로 떠났으며, 2003년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로 장녀 이씨의 간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와의 접촉이 끊겨 천 화백의 생사를 두고 미술계 안팎에 소문이 무성한 상태지만 현재 거동은 못 해도 의식은 있는 상태라는 것이 딸 이씨를 통해 그동안 미술계에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에는 예술원이 천 화백의 근황을 확인하고자 의료 기록 등을 요구했지만 이씨는 천 화백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아예 회원 탈퇴서를 제출한 상태다.
한경닷컴 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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