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유부남 C씨는 1997년 사업차 필리핀에 갔다가 현지 여성 D씨와 동거하며 두 아들까지 낳았다. 그러나 2004년 귀국한 뒤 연락을 끊어버렸다. 혼자 남아 아이들을 키우던 D씨는 2011년 사진 한 장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그녀는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의 주선으로 1년 반 동안 친자확인소송을 벌인 끝에 승소했다.
시민단체 등이 코피노(한국인과 필리핀인의 혼혈)의 아버지를 찾아준 사례는 더러 있었지만, 코피노가 직접 소송을 제기해 이긴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코피노는 3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한국인들은 일본이나 미국에 성적 착취를 당한 피해자라고 해왔는데 경제선진국이 된 뒤 가해자로 변했다”고 지적한 기사의 제목도 ‘사각지대 놓인 3만명의 코피노’였다.
코피노의 아버지는 대부분 장기 체류 남성이다. 필리핀을 방문하는 한국인이 연간 100만명 이상이고 사업이나 파견 근로, 유학 등을 위한 체류자만 9만여명이다. 혼인신고까지 하고 살다 도망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글리 코리안의 막장 드라마다. 필리핀의 어려운 경제 사정과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가톨릭 문화까지 더해져 코피노의 비극은 끝이 없다.
더 큰 문제는 고조되는 반한감정이다. 그동안에는 소송 비용이나 지식 부족으로 망설였지만 이젠 그냥 놔둘 수 없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국내외 여성단체와 법무법인도 지원에 나섰다. 이미 진행 중인 소송이 9건이나 된다니 간이 오그라드는 남자들이 많겠다.
일본의 경우는 일본인과 필리핀인 사이의 자피노(Japino)를 20여년 전부터 국가 차원에서 돌보고 있다. 출입국관리법을 바꿔 취업비자의 문턱을 낮췄고 국적법도 개정했다. 우리에게는 파월 장병과 베트남 여성 사이의 라이따이한 1만여명도 아픈 과거다. 그러나 국가와 당사자 모두 도리질만 친다. 미국은 1987년부터 그들을 받아들였다. ‘미스 사이공’의 눈물은 지금도 브로드웨이를 적시고 있다.
따지고보면 코피노든 라이따이한이든 다 우리 핏줄이다. 글로벌 시대의 또 다른 인적 자원이기도 하다. 1992년 베트남과 수교 협상 때 우리가 “악연이라도 유연(有緣)이 무연(無緣)보다 낫다”고 했을 때 베트남이 “우리는 현명한 민족이므로 과거에 집착해서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화답하지 않았던가. 벌써 일동제약 직원 등 민간 부문에서 코피노 돕기에 나섰다고 한다. 위안부 문제로 온나라가 뜨겁다. 혼란스럽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