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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공장 견습생서 수출 선봉장으로…"중동 사람 옷, 우리가 책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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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단지, 혁신의 현장 - '중동 전통의상용 직물' 수출하는 한상웅 한신특수가공 사장

"한 달 갈아신은 장화만 세 켤레"
40년동안 한눈 판적 없어

흰 옷·검은 옷 '중동남녀'
단순한 色보다 다양한 色 좋아해

200가지 제품 개발…2013년 수출액 2200만弗



[ 김낙훈 기자 ]
한상웅 한신특수가공 사장(63)의 손은 성한 데가 없다. 염색 공장 견습생으로 시작해 40년 가까이 한우물을 판 손이다. 그는 이제 연간 2200만달러의 염색 원단을 수출하는 기업인으로 변신했다. 불황도 없이 주야로 공장을 돌리는 그의 비결은 무엇일까.

몇해 전 중동 여성들이 혼비백산한 적이 있다. 건조한 날씨의 중동이지만 어느 날 비가 쏟아지자 검정색 차도르에서 물이 빠져 내의까지 검은 물이 든 것이다.

중동의 전통의상은 대개 남성은 흰색, 여성은 검은색 계통이다. 옷감에서 물이 빠지는 것은 중동 사람들에겐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들 옷감은 중국산이었다.

한국이 이 시장을 석권하자 중국 업체들이 대대적으로 설비를 투자해 ‘중동 전통의상용 직물’을 짜서 염색하기 시작했다. 현대화한 시설을 갖춰 놓고 염색했지만 견뢰도 등 세부 기술 면에서 부족했던 것이다. 그 뒤 중동 바이어들은 중국과의 거래를 거의 끊었다.

대구 서쪽 성서산업단지에 있는 한신특수가공. 요즘 불황으로 잔업을 하는 기업을 찾아보기 힘든데 이 회사는 예외다. 24시간 공장을 돌린다.

이 회사는 ‘중동 전통의상용 직물’을 만들어 수출하는 업체다. 지난해 수출액은 2200만달러에 이른다. 이 중 사우디아아라비아가 약 60%를 차지한다. 한신특수가공은 이 분야에서 국내 최대 업체다.

이 회사는 대구 지역 업체로부터 실을 사서 옷감을 짠 뒤 염색한다. 제직과 염색이 주사업이다. 주문은 중동지역 바이어에게 받아 이 중 절반은 중동 바이어가 지정해주는 중국이나 베트남 말레이시아 봉제업체로 보내고 나머지 절반은 직접 중동으로 수출한다.

한동안 중국 업체들과 경쟁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한 사장은 “중국 염색업체들이 생산을 포기할 테니 자사 설비를 싼 값에 사달라고 요청해온다”고 밝혔다.

한국과 중국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 사장은 “한마디로 기술력 차이”라고 말했다. 한 사장은 40년 가까이 한우물을 파왔다. 경북 영주 출신인 그는 한때 태권도 대구·경북 대표로 활동할 정도로 운동 신경이 뛰어났다. 키 165㎝에 태권도 5단의 다부진 몸매인 그는 태권도장을 차렸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다.

군에서 제대한 뒤 1976년 대구 비산염색단지 내 한 업체에 입사했다. 이때가 25세. 바닥에 물이 흥건한 염색공장에서 장화를 신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일을 배웠다. 그의 직급은 견습생, 현장 용어로 ‘시다’였다. 한 사장은 “한 달에 장화 세 켤레를 갈아 신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염색공장은 옷감을 기계에 넣은 뒤 물과 염료를 넣고 몇 시간 삶는다. 물을 많이 쓰기 때문에 바닥에 물이 고이기 일쑤고 수증기 때문에 실내는 사우나탕처럼 덥고 눅눅했다.

공장에서 20년 동안 일한 그는 1996년 독립했다. 대구에 윤승염직과 경동섬유 2개 회사를 세웠다. 이를 2001년 한신특수가공으로 통합했다. 초창기부터 중동을 겨냥한 직물을 생산한 것은 아니었다.

한 사장은 “처음에는 커튼지나 침대커버 등 침장 제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한 제품으로는 남는 게 없었다. 중국이 저임금을 앞세워 맹렬하게 추격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기존에 사우디아라비아에 직물을 수출하던 모기업 관계자가 찾아왔다. “우리 회사가 어려워져서 중동 전통의상용 직물 생산을 중단하려고 하는데 대신 한신특수가공에서 생산하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찾던 한 사장은 단번에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본격적인 무역을 위해 2005년 자회사인 한신텍스를 설립하고 준비과정을 거쳐 2008년 초부터 수출을 시작했다. 한신특수가공은 제직과 염색을 담당했다. 이 두 회사를 합쳐 전체 직원은 약 150명이다.

한 사장은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선 지 3년 만에 수출액이 1000만달러를 넘어섰고 지난해에는 2200만달러, 올해는 약 3000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올 8월 말까지 오더를 확보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한 사장은 “한국 제품이 중동 옷감 시장에서 약 7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인도네시아 등지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이 점하고 있어 사실상 중동 사람들이 입는 옷은 대부분 한국 사람들이 만든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그가 중동 수출을 늘릴 수 있었던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기술력이다. 중동 남자는 주로 흰옷, 여성은 검은 옷을 입는다. 그런데 염색 중 가장 까다로운 색깔이 흰색과 검정색이다. 한 사장은 “같은 흰색이라도

눈부신 흰색도 있고 상아빛이 들어간 흰색도 있다”며 “바이어가 원하는 색깔을 어떻게 정확히 맞추느냐가 노하우인데 우리는 그런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한 사장 자신이 40년 가까이 이 분야에서 기술력을 쌓았다. 직원들 가운데서도 오랜 기간 노하우를 쌓은 기술자가 많다. 그는 “흰색 계통의 컬러인덱스가 수백종에 이르는데 이를 정확히 맞추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숙련공의 눈으로 이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연구개발이다. 이 회사는 연구개발실을 통해 200여가지 제품을 개발했다. 중동 전통의상용 직물에 향 기능, 방수 기능, 주름 기능 등을 부가해 취향별로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한 사장은 “바이어의 요청을 귀담아 듣고 신제품을 개발한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정전기 방지 효과가 있는 직물도 개발했다.

셋째, 글로벌 마케팅 네트워크 확보다. 중동지역의 나라별, 도시별로 수출대리인 20명을 뒀다. 이들은 현지인이다. 그 지역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들의 취향을 정확히 읽고 한신특수가공으로 정보를 보내온다. 수출을 시작한 뒤 사우디아라비아 두바이 예멘 쿠웨이트 등 중동에 현지 대리인를 임명했고 그 뒤 수단 리비아 등 아프리카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다.

한 사장은 종업원과의 유대를 비롯해 인간관계를 중시한다. 염색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틈나는 대로 농사를 짓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팔공산 자락 6600㎡ 규모의 밭에서 배추 상추 고추 오이 가지 호박 참깨를 심고 가꾼다. 구내식당 재료로 공급하기 위한 것이다. 정성이 들어간 재료로 종업원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는 게 그의 보람이다. 그는 비산염색단지에서 일을 배울 때 자신에게 염색기술을 가르쳐준 사수 송모 과장(현재 80세)에게 감사의 표시로 자사에 염료를 납품토록 배려하고 있다.

한 사장은 “중동 전통의상용 직물은 한동안 일본이 지배해온 제품이지만 일본의 섬유산업이 사양화하면서 한국으로 넘어왔다”며 “시장은 꾸준히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더욱 기술을 개발하고 고급화해 이 시장을 빼앗기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대구=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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