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2,503.06

  • 17.30
  • 0.69%
코스닥

692.00

  • 1.15
  • 0.17%
1/3

[다산칼럼] 노동 생산성이 낮은 진짜 이유

페이스북 노출 0

핀(구독)!


글자 크기 설정

번역-

G언어 선택

  • 한국어
  • 영어
  • 일본어
  • 중국어(간체)
  • 중국어(번체)
  • 베트남어
윤리의식 상실 용인해온 우리 자신
세월호참사·생산성저하 직접 원인
뼈저린 반성 외의 언어·행위는 위선

조장옥 < 서강대 교수·경제학 choj@sogang.ac.kr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2년 시간당 산출량으로 볼 때 생산성이 가장 높은 곳은 노르웨이였다. 그 다음이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미국 순이었다. 노르웨이, 룩셈부르크, 아일랜드는 규모가 작은 나라다. 이 나라들의 2012년 인구는 대략 500만명, 53만명, 그리고 450만명 정도였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작은 나라는 의견 수렴이 쉽고 제도와 투자, 그리고 노동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쉽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을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이 나라들과 비교해 미국의 인구는 대략 3억1400만명이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큰 나라다. 그와 같이 큰 나라의 생산성이 항상 최상위 집단에 속한다는 것은 한편으로 선진 기술을 선도하는 국가로서 미국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노동자들의 노동 윤리가 그만큼 앞서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인구가 1억2750만명으로 미국 다음으로 큰 일본의 생산성은 미국의 62.6%로 OECD 회원국의 평균 아래다. 기술과 과학을 최우선으로 하는 나라로 알고 있는 일본의 생산성이 이토록 낮다는 것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대한민국의 생산성은 어떤가? 역시 OECD에 따르면 한국의 생산성은 미국의 45%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 집단에 속한다. 이 나라의 생산성이 이토록 낮은 이유는 너무나 많지만 그 핵심에는 노동자들의 노동 윤리가 있다. 집을 수리해 본 경험이 있다. 누군가가 말하기를 집을 수리하고 나면 암에 걸리거나 이혼을 하게 된다는 말을 해 주었으나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집을 수리하는 과정은 악몽이었고, 암에 걸리거나 이혼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와 같은 충고가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물론 대한민국의 노동자가 모두 그와 같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이 나라의 노동 현장에 결여돼 있는 윤리 문제는 이제 누구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보편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 윤리가 어려운가? 노동 윤리는 너무나 간단하다. 맡은 일을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머지않은 과거에 우리에게는 그와 같은 윤리가 있었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지금의 물질적 풍요를 이룩했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를 달성하고 난 다음에 우리는 가장 중요한 정신의 풍요를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다.

바른 윤리는 가장 중요한 생산성의 원천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세월호 참사,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왜 대피방송 한 번을 하지 않아서 그 많은 어린 생명을 희생시켰는지 원통하고,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은 의아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대피하시오”라는 방송 하나를 하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생산성인 것이다. 그 상황에서 무엇이 가장 많은 승객을 구할 수 있을까를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결코 이토록 많은 생명이 희생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노동 윤리의 상실이 올 때까지 온 결과인 것이다.

지금 누군가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다른 누군가는 모여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가 촛불이나 성명서로 해결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거리의 촛불은 마음으로 돌아가 우리 자신을 태우고 성명서의 언어는 말 없는 눈물이 되어 땅에 묻혀야만 한다고, 여러분의 생산성이 하는 말을 아직도 듣지 못한다는 말인가. 문제의 근본이 우리 자신에게 있는데 촛불로 탓할 대상이 어디 있으며 성명서로 꾸짖어야 할 원수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지금은 역설적이게도 해묵은 인간 개조론을 우리 모두에게 다시 말해야 되는 부끄러운 계절인 것이다. 윤리의 상실, 그리고 일상에서 그것을 용인한 우리 모두가 가해자라는 뼈저린 반성 이외의 언어와 행위는 2014년 봄 대한민국에서 모두 위선이다.

조장옥 < 서강대 교수·경제학 choj@sogang.ac.kr >




- 염색되는 샴푸, 대나무수 화장품 뜬다

실시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