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이면 쏟아지는 말의 홍수
정치공학처럼 왜곡된 표현도 많아
품격 있는 정치 위한 용어 구사를"
이상천 < 前영남대 총장·기계공학 >
최근 정치인들의 말에 ‘정치공학적’이라는 표현이 눈에 자주 띈다. 예를 들어 보자. 얼마 전 광역시장에 출마한 한 후보는 상대방 후보들이 단일화를 이루자 “이번 단일화는 오로지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정치쇼이며, 시민을 기만하는 수준 낮은 정치공학적 이벤트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에는 야권의 한 중진 정치인이 야당의 신당 창당에 대해 “이번 통합 추진 선언이 눈앞에 닥친 지방선거에서 손쉽게 이기기 위한 정치공학적 선택이 아님을 두 정치 세력은 뼈를 깎는 성찰과 각오를 통해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이 ‘정치공학적’이라는 표현을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몰라도, 일반인에게는 ‘자기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획한 작위적 행태’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 공학 전공자들은 이처럼 ‘공학적(工學的)’이란 단어가 왜곡 사용되는 데 당혹스러워하고 있으며 불쾌감마저 느낀다.
공학이란 ‘자연과학적 방법과 성과를 인간생활에 유용하도록 개발·실천하는 응용과학’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흔히 말하는 ‘기술’은 그 결과물의 하나다. 인류 문명의 발전에 과학뿐 아니라 공학과 기술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조차 없다. 가까이는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공학자와 기술자가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불과 40여년 만에 황무지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반도체, 조선, 자동차산업뿐 아니라 산업 각 분야에서 묵묵히 기술개발을 위해 헌신해온 일꾼들은 바로 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풍요와 향상된 삶의 질도 상당 부분 그들 노력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말한 ‘정치공학적’이란 표현은 이들의 자긍심에 상처를 주고 있다.
공학은 논리적, 합리적,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으며, 효율과 안정성을 모두 추구하는 학문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자연과 물질을 대상으로 탐구하는 공학이 현대와 같이 복잡하고 정교한 사회현상을 규명하는 데 활용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금융공학’은 금융 및 경제현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을 수학과 통계, 그리고 공학이론의 접목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학문이며, ‘사회공학’은 시스템공학과 통계이론을 응용해서 사회문제의 해결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그럼 정치와 공학이 합성된 ‘정치공학’이란 어떤 분야일까? 정치공학이란 정치적 의사결정, 규칙제정 또는 제도도입 등에 공학이론을 접목시킨 정치학의 한 분야이다.
예를 들면, 개헌 등 새로운 정치 제도를 만들 때 국론분열을 초래할 수 있는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과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효율적으로 설계하기 위해 공학에서 쓰이는 최적화기법을 활용하는 것이 바로 ‘정치공학적’ 해법이다. 따라서 정치공학은 고도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요구하며, 합리적인 방법으로 결론을 도출해낸다는 점에서 참다운 민주주의의 가치를 구현한다고 볼 수 있다.
정치공학은 국민 다수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지, 결코 정치인이나 그가 속한 정파의 이익 또는 득세를 위해 이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좋은 의미의 정치공학이 일부 정치인에 의해 왜곡된 의미로 쓰이는 것을 보며 공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씁쓸하다.
선거일이 다가오고 있다.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린다. 이제 품격 있는 정치를 위해 그들이 순화된 언어와 정확한 용어를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본다.
이상천 < 前영남대 총장·기계공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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