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총선…8억 유권자들의 선택은 '성장 위한 변화'
'표심' 파고든 모디노믹스
규제완화로 해외투자 유치…제조업 육성·인프라 확충
2012년부터 성장률 반토막
관료 부패로 개혁 지연…성장 잠재력 갉아먹어
시장선 환호하지만…
재원마련 위한 대책 없어…종교적 갈등 봉합도 숙제
[ 김순신 기자 ]
‘세계 최대 민주주의 잔치’로 불리는 인도 총선에서 8억여명의 인도 유권자들은 ‘경제 성장’을 선택했다. 인도국민당(BJP)이 주도하는 야당연합 국민민주연합(NDA)이 과반수를 훨씬 뛰어넘는 의석을 확보, 10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인도 국민의 마음을 움직인 건 BJP의 총리 후보자인 나렌드라 모디 구자라트주 주총리가 주창한 ‘모디노믹스(Modinomics)’였다. 모디의 경제정책을 뜻하는 모디노믹스는 외국인의 투자를 통한 인프라 확충과 제조업 육성,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 핵심이다. 구자라트주를 인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로 탈바꿈시킨 모디의 시장친화정책과 강력한 리더십이 위기에 빠진 인도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표심’을 잡았다.
○과반의석 차지 … 정책추진 힘 받아
BJP는 이번 총선에서 총 543석의 하원의석 가운데 절반이 넘는 282석을 차지했다. 인도 총선에서 단일 정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은 것은 30년 만이다. 전문가들은 과반 의석 확보로 단독 정부 구성이 가능해짐에 따라 모디의 개혁정책에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했다.
내각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인도는 총선을 통해 하원의 다수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내각을 구성한다. 상원은 각 주와 연방직할시 의회에서 선출되며, 입법권을 갖지만 내각 구성에 관여할 수 없다.
이번 총선은 정치 명문가 ‘네루-간디’ 가문 출신의 라훌 간디와 하층민 출신 모디의 양자 대결 모양새로 치러져 주목 받았다. 과거 인도 유권자들은 네루-간디 가문이면 무조건 표를 몰아줬다. 하지만 이번엔 경제문제가 모든 이슈를 압도했고, 유권자들의 마음은 일찌감치 모디노믹스를 선거캠페인 전면에 내세운 모디에게로 기울었다. 모디는 조세제도 정비 등 규제 완화와 고속철도 건설, 스마트 도시 100개 건설 등을 핵심공약으로 제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도 유권자들은 모디가 구자라트주 총리로 재직할 때 일궈낸 경제적 성과가 인도 전역으로 확산되길 바랐다”고 분석했다.
구자라트주는 모디 총리가 2001년부터 세 차례 연임하는 동안 고속 성장을 지속했다. 모디 총리는 과감한 규제 완화를 통해 타타모터스, 푸조, 포드 등의 기업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또 발전시설을 확충해 만성적인 전력난도 해결했다. 덕분에 구자라트주는 인도에서 유일하게 다른 주에 전력을 수출하고 있다. 구자라트주의 1인당 국민소득(2011년 기준)은 1500달러로 10년 전에 비해 3배 이상으로 늘었다.
○4%대 성장률 다시 끌어올릴까
모디노믹스가 이번 총선에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건 최근 몇 년 새 인도의 성장세가 급격히 둔화됐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2011년까지만 해도 연 7~9%대 고성장을 하던 인도경제가 2012년부터 4%대로 내려앉았다. 실업률도 두 자릿수에 육박하고 있다. 인도경제모니터링센터(CMIE)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의 실업률은 9.9%를 기록했다.
이는 대외여건 변화와 인도 내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인도 경제가 고성장세를 구가할 때 집권여당인 국민회의당(INC)은 낙후된 인프라 개선, 조세제도와 노동시장의 정비 등 경제 체질 개선을 등한시했다. 또 8억명의 국민에게 한 해 200억달러 이상의 식료품비를 지원하는 ‘식량안보법’ 등 선심성 정책을 쏟아냈다. 그 결과는 재정 악화로 이어졌다.
복잡한 규제와 관료부패 역시 투자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규제로 인해 대형 인프라 사업(100억루피 이상)의 48%(작년 말 기준)가 지연됐다. 비제 칼란트리 세계무역센터 부의장은 “인도는 느린 행정처리와 공무원의 부패 등으로 많은 인프라 개발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약화되고 있는 가운데 작년 5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이 부각되자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인도 루피화 가치는 폭락했고, 물가는 치솟았다. 시장의 불확실성 증가로 소비와 투자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난해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4.4%였다.
○공약실현 위한 재원 마련이 ‘관건’
모디가 과연 인도경제를 되살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시장은 일단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모디가 총리 후보로 지명된 작년 9월 이후 인도 뭄바이증시의 센섹스지수는 꾸준히 올라 지난 16일 24,121.74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들어 달러당 63.10루피까지 폭락했던 루피화도 반등해 연중 최고치(58.75)를 기록했다. 루치르 샤르마 모건스탠리 신흥시장 부문 총괄사장은 “현재 인도의 상황은 1980년대 미국과 비슷하다”며 “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과 경기침체의 동반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물가억제정책과 규제 완화 등의 조치가 시행된다면 인도경제는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에서는 모디노믹스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모디의 경제적 업적이 과대평가됐으며 모디노믹스 역시 막상 실행 단계에 접어들면 재원 마련이란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구자라트주는 모디 부임 이전부터 공업화가 진행돼 인도 평균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었다”며 “모디의 경제적 성과가 과장됐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구자라트주는 1990년대 연평균 4.8% 성장해 인도평균성장률(3.7%)보다 1.1%포인트 높았다. 모디가 집권한 2000년대의 평균 성장률 역시 연 6.9%로 5.6%인 인도 전체 성장률과 비교해 1.3%포인트 더 성장하는 데 그쳤다는 지적이다.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책 실행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엔 인도정부의 재정 여력이 부족해서다. 강선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모디의 핵심 공약인 고속철도 건설이나 전력시설 확충을 위해선 막대한 규모의 재정이 필요하다”며 “인도의 재정적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7.3%에 달해 대규모 국책사업을 진행할 여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모디의 핵심 공약인 ‘조세 테러리즘의 종식’ 역시 사실상 감세를 의미한다”며 “재정 마련의 구체적 수단이 제시돼야 정책이 신뢰를 얻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양한 종교가 얽혀 있는 인도에서 국민들의 화합을 이끌어내는 것 역시 모디노믹스의 성공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로 지목된다. 힌두민족주의자인 모디는 2002년 구자라트주에서 종교 간 갈등으로 폭동이 일어났을 때 힌두교도의 폭력으로 1000여명의 이슬람교도가 사망한 사태를 방조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미국은 이 때문에 2005년 모디에게 비자 발급을 거부하기도 했다. 인도 내 1억3800만명에 달하는 이슬람교도의 협력 없이는 원활한 정책 실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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