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희 기자] 직설적이면서도, 그 안에 담긴 감성은 은유적이다. 영화 ‘인간중독’이 가진 섬세하면서도 단단한 힘은 김대우 감독의 모습과 상응한다. 온화한 얼굴, 상냥함이 깃든 미소 뒤에는 수십 년간 견고히 쌓아온 자신만의 세계가 있었다.
최근 ‘인간중독’ 개봉에 맞춰 한경닷컴 w스타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김대우 감독은 조곤조곤 말하면서도 작품에 대한 고집을 드러내고, 이따금은 영화 엔딩 곡을 들으며 눈물을 흘릴 정도의 여린 소녀 감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촬영이 안 풀리는 날, 영화 엔딩곡을 들으며 눈물 흘린 적이 있어요. 곡 자체도 슬펐지만, 작품 속 주인공들의 상황 등이 눈물이 나더라고요. 영화를 하면서 이렇게 눈물을 흘릴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제 또래, 어떤 남자가 음악을 들으며 울겠어요?”
영화 ‘인간중독’은 베트남전이 막바지로 치달아가던 1969년. 엄격한 군 관사 안에서 부하의 아내 종가흔(임지연)에 첫 사랑을 느낀 교육대장 김진평(송승헌)의 치명적이고 은밀한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석적인 삶을 살아가던 김진평은 그는 부하인 경우진(온주완)의 아내 종가흔(임지연)과 만나며 그의 묘한 매력에 사로잡히고, 점점 더 서로에게 중독된다.
이처럼 ‘인간중독’은 말 그대로 인간에 대한 중독을 표현하고 있다. 제목이 주는 강렬함은 관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부분.
김대우 감독은 “중독이라는 말이 나쁜데 쓰이잖아요”라며 “그 앞에 인간만 붙여도, 인간이 한 생을 살면서 가장 찬란한 상황이 되는 게 신기했어요. 중독이란 말이 나쁜 말이고, 인간만 붙여도 찬란한 말이고요”라고 제목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사람이 살면서 인간에게 중독되는 경험처럼 찬란한 순간이 어디 있겠어요. 여자든 남자든. 중독 중에 최고지 않나요? 어떻게 보면 범죄 항목에만 있는 단어인데. 인간을 붙여서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 될 수 있다니”라고 웃어 보였다.
의외의 모습들. 그것은 비단 김대우 감독만의 것은 아니다. 그가 바라본 시선, 그가 함께하고자 하는 배우들 모두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대중의 앞에 나타났던 것. 전작 ‘스캔들’이 그러했고 ‘방자전’이 그랬던 것처럼. 김대우 감독은 주연배우인 송승헌까지 이전과는 다른 이미지를 들여다보고자 했다.
“의외로 단순한 데서부터 시작했어요. 송승헌이 여자를 바라보는 눈이나 물건을 밀어주는 길이, 속도, 머리는 넘겨줄 때의 방식. 다른 건 베테랑이지 않나요? 내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 승헌씨 역시 당황했을 거예요. 저는 전체의 얼개보다는 물건일 때의 순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승헌 씨의 움직임이나 눈빛 같은 것들. 그런 걸 위주로 이미지를 짰죠.”
아주 작은 방식, 남들이 포착하지 못한 부분들을 들여다볼 줄 아는 감독. 김대우 감독은 ‘멜로’가 가진 가장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 송승헌의 몸짓, 눈빛 하나에도 힘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이는 영화 곳곳에서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힘을 발휘한다. 가령 문을 두드리는 장면이나, 상대를 보는 김진평의 시선 같은 것에서도 남녀가 꿈꾸는 낭만을 담고 있는 것이다.
“김진평을 송승헌이 아니었으면 누가 했을까 싶어요. 영화 속에 문 두드리는 장면이 많은데요. 문 두드리는 걸 ‘누가 두드리면 어울렸을까’ 생각해봐도 아무도 안 떠올라요. 송승헌이 두드리는 게 제일 좋지 않을까요? 여자 입장에서도 문을 열었는데 송승헌이 서 있는 건, 최고 아닌가? (웃음)”
극 중 엘리트 군인인 김진평은 이숙진(조여정)과 사랑 없이 결혼, 의미 없는 결혼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단순하게 ‘인간중독’을 바라보자면 ‘불륜에 대한 이야기’ 정도로 축약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보다 더 깊고 짙은 상처와 설렘이 있었다.
“김진평과 종가흔의 사랑은 제도상으로는 불륜이죠. 송승헌과 함께 인터뷰를 다니면서 생각한 건데 이 영화는 ‘결혼한 사람의 첫사랑이야기구나’ 싶어요. 결혼한 사람이 뒤늦게 첫사랑을 느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 딜레마들이요.”
첫 사랑. 그리고 상대에 대한 열렬한 마음은 마치 중독의 그것과도 닮아있다. 이처럼 내밀하게 인물들의 감정을 파헤치고, 헤집는데도 김대우 감독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베드신’에 모든 관심이 몰려있는 상태. 이에 ‘베드신’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섭섭한지,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궁금했다.
“19금이고, 다른 감독보다 파격이고, 멜로영화에요. 물론 이 말 중 아닌 것은 없어요. 이 3개가 붙는다고 해도 부담감 같은 건 없고요. ‘방자전’도 그랬는데 결국 포커스가 베드신에 맞춰져도 결국엔 다들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봐요. 보고 나왔는데 신용을 지키지 않으면 얘기가 나오겠죠. ‘그 영화 첫사랑에 대한 얘기라더니 왜 이렇게 섹스에만 몰두했어?’라는 식으로요.”
어른의 사랑은 그런 것이라며 웃는 김대우 감독에게서는 특유의 색채 같은 것이 느껴졌다. 누구나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겠지만, 이토록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라니. 자연히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김대우 감독의 베드신은 여타 작품과는 다른 묘한 매력이 있다. 직접적이면서도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묘한 능력. 김대우 감독 역시 “베드신에 온 힘을 기울였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촬영감독, 조명감독, 조감독, 저까지 ‘절대 실수 없이 찍자’고 수백 번 다짐했죠. 배우들이 현장에서 노출하고 있는 상태니, 현장에서 의논을 하거나 버벅 되는 건 절대 안 돼요. 배우가 다시 촬영을 요구할 순 있어도 스태프들이 다시 찍자고 하는 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압박감, 스트레스도 굉장했어서 찍고나서 쾌감이랄까, 성취감 이런 것들이 상당했죠.”
아름다운 영상, 배우들의 호흡을 위해서 정확하고 신속하게 촬영하고자 했다는 감독의 배려. 그것은 배우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며, 베드신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밤새 누군가를 아름답게 찍기 위해서 지친 몸으로 고민한다는 것이 정말 아름다운 일 같아요. 나중에 화면을 보고 감탄했다. 우리 스태프들끼리 유행어처럼 그런 말을 많이 했다. 송승헌 멋있어, 임지연 예뻐. ‘송멋임예’라고요.”
정말이지 ‘송멋임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덩달아 따라 외쳤다. 스크린 속 아름다운 배우들은 물론이고 1969년 그 시대가 주는 분위기 역시 관객들의 눈을 미혹시킨다. “두 배우에게 잊혀지지 않는 기록물을 남겨주고자”했던 김대우 감독의 노력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송승헌, 임지연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어요. 송승헌의 결심이 주는 중압감이랄까. 이 사람이 다른 작품으로 하여금 훨씬 쉽게 얻을 수 있는 보상 같은 걸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인생에 보답해줘야지 싶었어요. 아름다운 시절, 아름다운 모습을 기록물로 남겨줘야지 생각했죠. 그건 영화에 드러날 거라고 믿어요.” (사진제공: 호호호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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