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署 악성사기전담팀 김미선 경사
강남署 강력2팀 김은지 경장
[ 윤희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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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일 오후 서울 압구정동의 한 제과점. 한 50대 남성이 40대 여성을 흉기로 위협하며 인질극을 벌이고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20여분 뒤 강남경찰서 강력2팀의 김은지 경장(32)이 제과점 안으로 들어섰다. 주변이 술렁였다. 김 경장은 남성 주변으로 다가서며 자신의 경찰 신분증을 내보였다.
“제가 아저씨 딸 같은 사람이에요. 아저씨 뭐 힘든 일 있으세요? 저한테 말씀하시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김 경장과 선배 형사 2명의 계속된 설득에 이 남성은 인질을 먼저 제과점 밖으로 내보낸 뒤 자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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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여성의 업무 영역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데다 각종 현장을 담당하는 부서에 여성 경찰관 배치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경찰 내부의 여경 임용자 및 승진자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여경들이 경찰서 건물보다는 각종 범죄 현장에서 맹활약하게 된 배경이다.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2010년 449명(전체 임용자의 16.3%)에 불과했던 여성 경찰 임용자는 지난해 1231명(20.2%)까지 늘어났다. 경위 이상의 여경 승진자도 2010년 68명(전체 경위 이상 승진자의 5.4%)에서 올해 354명(6.7%)으로 증가했다.
서울 시내의 한 경찰서 형사과장은 “예전에는 형사과 등 현장근무 부서에선 여경을 꺼리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지금은 웬만한 경찰서 형사과엔 여경이 두세 명씩 포함돼 있다”며 “여경 숫자 자체가 늘어난 것도 이유지만 현장근무를 원하는 여경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녀 구분 없이 근무…‘형님’ 호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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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게 현장 부서를 지망하는 여경은 많다. 하지만 실제로 해당 부서에 배치되기 위해서는 강인한 의지와 체력 등을 갖춰야 한다. 원한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한다는 얘기다. ‘압구정 인질극’ 사건 현장에 나갔던 김은지 경장은 ‘강력형사’가 되기 위해 고향인 경남의 남해경찰서에서 근무하던 중 서울로 발령 신청을 했다. 부모의 반대도 ‘현장의 경찰’이 되겠다는 김 경장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는 설명이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배치되는 현장근무인 만큼 그에 따른 책임과 부담도 크다. 수십년간 남성 중심이었던 현장 부서에서 적응하려면 기존의 남성 경찰 못지않은, 때론 그보다 더 뛰어난 능력과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영등포경찰서 악성사기전담팀의 김미선 경사(37) 역시 그런 생각으로 현장에서 ‘맏누나’ 역할을 하고 있다. 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4명 중 유일한 여성으로 팀 내에선 가장 고참이다. 지난달 3월 중고거래사기로 수천만원을 챙긴 사기범을 잡아 구속하기까지 보름여를 일에만 매달렸다. 한시라도 빨리 체포해야 한다는 생각에 직접 법원으로 달려가 영장을 챙겨오기도 했다. 김 경사는 “언제나 범인보다 한발 앞서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호남 팀장은 ‘남자 선배 같은 여자 선배’를 근무 신조로 삼고 있다. 같이 밥을 먹고 편하게 대화하는 등 가능한 한 모든 생활에서 팀원들과 함께하려 노력한다고 했다. “그것이 가장 빨리 남성 팀원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김은지 경장은 다른 남성 팀원들을 ‘형님’이라고 부르며 사실상 ‘남동생 취급’을 자처한다. 팀의 막내지만 ‘힘들다’는 투정을 부려본 적이 없다. 김 경장은 “요즘 방영 중인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의 여자 강력형사 ‘어수선’을 보며 ‘저렇게 어리바리해서는 강력형사를 할 수 없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부드러운 목소리’ 현장에선 장점
여성 경찰관들은 현장에서 근무하는 여경의 장점으로 ‘용의자나 피해자의 마음을 여는 데 유리하다’는 것을 꼽았다.
강호남 팀장은 “여성 특유의 공감능력으로 남자 경찰보다 용의자·피해자와 수월하게 소통하고 타이르는 편”이라며 “특히 여성 피해자와 피의자는 극도로 예민해 여성 경찰이 상담하고 심문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 때가 많다”고 전했다. 술에 취해 난동을 피우는 사람에겐 물을 한 잔 건네며 진정시키고, 가정폭력 피해를 입고 경찰서를 찾은 여성을 안심시키는 노하우가 생겨 별로 어렵지 않게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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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현장근무, 특히 범인을 검거할 때는 팀 내 남성 경찰과의 협업이 ‘생명’이다. 여경들은 때론 용의자를 유인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고의로 용의자 차와 추돌 사고를 낸 뒤 용의자를 차량 밖으로 유인하거나 도시가스 점검원인 척하면서 용의자 집에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김미선 경사는 “남자 경찰이 나서면 용의자가 금방 눈치채고 도주하는데, 여자 경찰이면 용의자들이 상대적으로 긴장을 늦춘다”고 했다.
◆결혼·출산·육아는 여전한 걸림돌
더욱 많은 여성 경찰이 현장에서 활약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경찰 내부에선 ‘남자만큼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의 시선이 여전한 게 사실이다.
기업에 다니는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여경들의 최대 고민도 결혼·출산·육아와 관련된 문제다. ‘아이를 낳고 오면 육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고, 그러다보면 현장근무를 하는 데 지장을 준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자의 반 타의 반 결혼을 미루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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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체력적인 부담과 남성 중심 부서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여경들의 부담으로 남아 있다. 최근 형사과 등 현장 부서에 배치되는 사례가 나오긴 했지만 그 수가 기대만큼 크게 늘어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호남 팀장은 “1980년대 경찰 근무를 시작할 때는 한 경찰서에 여경이 4~5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 수가 10배 정도 늘었다”면서도 “더 다양한 영역에서 여경이 활약하려면 지금보다 더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형사과에 오고 싶다”며 상담해오는 여경 후배들이 많지만 그들의 희망대로 배치되지 못하는 상황을 못내 안타까워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