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곤란→심장쇼크→스텐트 시술까지
증세 급해 순천향대병원으로
심장 마비 보여 심폐소생술…빠른 처치로 고비 넘겨
삼성서울병원으로 이송 뒤 혈관 확장 스텐트 시술 받아
의료진 "초기 조치 잘돼"…후유증 여부는 지켜봐야
[ 이준혁 / 남윤선 / 강현우 기자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72)이 호흡곤란과 심장마비 증세 등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극적으로 위기를 넘겼다. 병원 도착 당시 심장마비를 일으켜 응급조치를 받고 난 뒤 심장 혈관을 넓히는 스텐트(stent) 시술을 진행, 현재는 심장 상태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이 회장의 상태 호전 여부에 따라 병원 입원기간이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삼성그룹은 한숨 돌렸지만 여전히 초긴장 분위기다.
○호흡곤란 직후 심장쇼크
의료계와 삼성그룹에 따르면 이 회장이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인근 순천향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시간은 10일 밤 10시55분. 워낙 다급해 삼성서울병원으로 가지 못하고 인근 순천향대병원을 찾은 것이다.
순천향대병원 관계자는 “(이 회장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심장마비 상태여서 당직 의료진은 곧바로 심폐소생술에 들어갔다. 만약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병원 의료진이 진단한 이 회장의 증상은 호흡곤란에 따른 급성심근경색이다.
병원 관계자는 “가까운 병원으로 바로 달려온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또는 심정지)으로 쓰러졌을 때 아무리 늦어도 4~5분 안에 응급조치에 들어가야 살 수 있다. 보통 몸속 혈관에는 4분 정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산소가 남아 있기 때문인데, 늦어도 8분까지는 희망이 있다. 정말로 우리 병원(순천향대병원)으로 온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변동원 순천향대병원 진료부원장은 “삼성서울병원으로 가는 걸 고집했다면 큰일 났을 것이다. 옆에 있던 비서진이 굉장히 중요한 판단을 내렸다. 이 회장이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심장이 정지된 상태였는데, 다행히 처치가 빨리 이뤄져 생명을 건졌다. 천운이 따랐다”고 말했다.
○시술 후 자가 호흡 유지
의료진이 이 회장에게 7~8분 정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나서야 비로소 심장 박동이 되살아났다. 의료진에 따르면 심폐소생술은 흉부압박 30회, 인공호흡 2회를 반복했다. 양쪽 가슴 사이 정중앙을 두 손으로 누르기를 수십 번 반복하자 막힌 호흡이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이 회장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의료진은 이 회장 측 비서진과 논의를 거쳐 일단 위기는 넘겼다고 판단, 응급차로 이 회장을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기는 것에 동의했다.
이 회장이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45분.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 정은석 심장센터장 등이 논의한 끝에 11일 오전 1시부터 심장 혈관 확장술인 ‘스텐트’ 시술에 들어갔다.
집도의는 국내 급성심근경색 분야의 최고 대가로 꼽히는 권현철 순환기내과 교수가 맡았다.
새벽 1시 무렵 시작된 시술은 1시간이 지난 2시7분에야 끝났다. 이 회장은 시술 이후 정상적인 호흡을 유지하면서 수면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분간 입원 치료 불가피
이 회장은 심장 기능이 호전돼 현재 약물 및 수액 투입 등 보전적 치료를 받고 있다. 또 심장과 폐 기능이 저하돼 시술 중인 에크모(ECMO·체외막산소화장치)도 경과가 좋아져 곧 뗄 예정이다.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은 예상되는 후유증에 대해 “순천향대병원에서 초기 응급치료를 매우 잘했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시행한 관련 시술도 성공적이어서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뇌 손상 여부에 대해 의료진은 “초기 조치를 신속하게 잘했기 때문에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전했다. 의료진은 또 향후 정상적으로 업무 수행이 가능한지에 대해 “응급조치와 시술이 잘 끝나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회장의 입원기간은 앞으로 2~3주 정도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 회장이 심근경색을 일으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회장 같은 만성 폐질환을 앓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혈압이 오를 때 심장과 뇌혈관에 부담이 증가하면서 심근경색증이 발병할 수 있다.
"고비 넘겼어도 합병증 위험성 있어 … 48시간 집중 관찰해야"
의료 전문가들 "혈소판 억제제 등 지속 관리 필요"
심근경색은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좁아졌다가 갑자기 막히는 질환이다. 막힌 혈관에 혈전(혈액 찌꺼기 또는 피떡)이 끼면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의료 전문가들은 급성심근경색이 발생한 지 48시간이 환자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설명한다.
수시간에서 수일 사이에 혈관에서 피가 제대로 돌지 않는 경색 범위가 늘어나 순식간에 부정맥(심장에 피가 통하지 않는 증상)을 불러 사망까지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안정천 고대안산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동맥경화증으로 좁아진 심장혈관이 갑자기 막히는 급성심근경색은 분초를 다투는 질환”이라며 “발병 1시간 이내 응급시술을 받으면 90% 이상 정상으로 회생하지만, 8시간이 지나면 생존율이 50% 밑으로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현재 보건당국은 급성심근경색 환자에게 30분 안에 응급 약물을 투여하고 90분 내에 스텐트 시술을 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강덕현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심근경색 발병 초기에는 여러 합병증 위험이 높기 때문에 최소 24~48시간은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다”며 “그 기간엔 집중관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해 삼성서울병원 의료진은 ‘저체온 치료’를 시행 중이다. 인체 조직에 혈류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가 혈액 순환이 재개되면 활성화 산소 등 해로운 물질이 생성되는데, 이를 막기 위해 저체온 치료를 실시한다. 체온을 낮춰 해로운 물질의 생성을 줄이면서 조직 손상을 막기 위해서다. 24시간 저체온 치료 후 정상 체온을 회복하게 되면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게 된다. 이 회장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삼성 측은 이 같은 설명을 내놓고 있다.
상당수 전문의는 “급성심근경색에 효과적인 ‘스텐트 확장술’(혈관에 금속 그물망을 삽입하는 시술)이 질병 완치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입을 모은다.
윤영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교수는 “스텐트는 좁아지거나 막힌 혈관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지만 스텐트 삽입술 후에도 혈관이 다시 좁아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김효수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스텐트를 넣고 나서도 혈소판이 끼지 않게 하려면 혈소판 억제제와 아스피린, 베타차단제 등을 이용해 평생 관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심폐소생술
CPR. 심장 마비가 발생했을 때 인공적으로 혈액을 순환시키고 호흡을 돕는 응급치료법이다. 심장이 멎은 후 4~5분이 경과하면 뇌세포 손상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 이전에 곧바로 실시해야 한다.
■ 저체온치료
심장기능이 일시 정지된 환자의 체온을 인위적으로 내려 신진대사 및 산소 소비량을 감소시킴으로써 뇌세포 파괴를 막는 치료법. 신진대사가 느려지면 인체의 조직 반응도 그만큼 늦춰진다. 체온을 내리는 정도에 따라 경도(32도 정도까지), 중등도(32~26도), 고도(26~20도) 및 극심한 저체온(20도 이하)으로 나눈다.
이준혁/남윤선/강현우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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